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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그네 설움 [송재소]

문근영 2012. 4. 18. 07:15

제 583 호
나그네 설움
송 재 소 (성균관대 명예교수)

중국의 조선족 여인들은 남편을 ‘나그네’라 부른다. 왜, 그리고 언제부터 그렇게 불렀는지 이유는 분명히 알 수 없다. 몇몇 조선족 동포에게 물어보아도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내 생각으로는,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의 고달픈 역사가 ‘나그네’라는 말 속에 녹아있는 것 같다. 일제시대에 중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낮선 이국땅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을 것이다. 혹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또 혹은 독립운동을 하느라 남자들은 늘 밖으로 떠돌아 다녔고 이런 남편을 나그네라 부르지 않았을까?

여인들은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남편을 나그네라 부르며 원망했을지 모르지만 그런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남자들 또한 마음이 편할 리 없었을 것이다. 1940년에 발표된 백년설의 노래 ‘나그네 설움’은 지금 들어도 가슴이 저려온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욱 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 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나그네는 항상 서러운 존재이다. 조국을 떠나 이국땅에서 사는 것 자체가 나그네 생활인데 그곳에서도 떠돌아 다녀야 하니 그 서러움이 어떠하리라는 것은 능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백년설의 노래는 조국을 잃고 떠도는 우리민족의 서러움과, 가족을 떠나 정처 없이 발길을 옮겨야 하는 남편의 서러움을 동시에 노래한 것이 아닐까?

요즘 남자, 넘 외로워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니 2011년 대한민국의 남자들 처지가 문득 떠오른다. 지금 이 땅의 남편들이 나그네처럼 처량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사를 갈 때에는 제일 먼저 자동차에 타고 있어야 한다, 아니면 마누라가 예뻐하는 강아지를 꼭 껴안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버림받지 않고 같이 갈 수 있다’는 등의 유머가 남자들의 위신을 한 없이 추락시키고 있다. 정년퇴직 후에 집에서 밥 세끼를 먹는 남편을 ‘삼식이 새끼’라 하고 세 끼 다 밖에서 먹는 남편을 ‘영식님’, 한 끼만 먹는 남편을 ‘일식 씨’, 두 끼 먹는 남편을 ‘이식 놈’이라 한단다. ‘삼식이’라는 물고기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삼식이 새끼’라 불리는 것만으로도 다행인 것이, 여차하면 냄비 속에 들어가 매운탕 감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도 있다. 물론 우스갯소리이겠지만 떨떠름한 느낌을 떨칠 수 없다. 한 평생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힘들게 일하다 퇴직한 후에 아내로부터 푸대접 받고 자식들로부터도 소외당하는 우리 남편들의 처지가 서러움을 안고 살아가는 나그네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른바 ‘기러기 아빠’는 또 어떤가? 월급의 대부분을 아내와 자식이 있는 외국으로 송금하고 혼자 쓸쓸히 살다가 일 년에 한두 번 기러기처럼 날아가서 가족을 만나고 돌아오는 기러기 아빠야말로 문자 그대로 나그네이다.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며 외롭게 생활하다가 끝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나그네 생활에 지쳐서 정처 없는 발길을 접은 것이다.

이런 일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남편들의 위치는 점점 위축되고 아내들의 위세가 점점 높아지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남자는 왜 나그네가 되어야만 하는가? 전통적인 가부장적(家父長的) 사회에서 자행된 남성들의 횡포에 대한 대가를 지금 받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더라도 남자를 영원한 나그네로 묶어두는 것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현 시점에서 한 가정에서의 남편의 위치, 아버지의 위치를 정립하는 일은 남녀평등의 차원을 떠나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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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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