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쓴 시
고광헌
어머니
머리에 보자기 두르고
학교 오시던 날
누런 보리밭 옆 운동장으로
5월 하늘 새까맣게
무너지던 오후
더이상 나는
집으로 돌려보내지지 않았다
쪽 풀린 어머니의 검은 머리칼
서울 와서
가발공장 여성노동자
데모에서 보았다
평생 일해도 갚을 수 없는 수업료
그때
어머니 전생애를 잘라
조용히 머리에 두른 것이다
어머니의 달리기
고광헌
어느 봄날
앞집 굴뚝 밥 짓는 연기 오를 때
방장산 장군봉 봄나물 따러 간
어머니 기다리다
붉은 해 지는 것 보았네
달팽이처럼
무릎 턱밑까지 말아올리고
마룻바닥에 쓰러져
잎 트기 시작한 탱자나무 사이로
배고픈 해 지는 걸 보았네
노랗게 봄 독 오른 가시에
마알간 얼굴 긁히며 쓰러지는
검은 한낮을 보았네
쌀 없는 저녁 밥상 차리러
봄나물처럼 달려오던 어머니
지금도
어머니의 싱싱한 달리기 이길 수가 없네
-시집『시간은 무겁다』(창비,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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