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 교
박 철
밋밋한 김포 벌판 한가운데 놓인 다리라 하여
원래 이름은 평교(平橋)였다네
거기에 다리가 붙어 평교다리라고 불리다
그게 세월이 흐르면서 팽계다리가 되고
내가 자랄 때는 핑계다리가 되어 있었다네
세상의 모든 아이는 거기서 다 주워왔다는 핑계다리
강화 가는 길목에 목이 꽉 차게 차가 들어차면 사람들은
모두 좁은 핑계다리 탓이라고 입을 모았다네
그런 사람들의 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리는
아무런 핑계 없이 세월을 버티다가
인천공항이 들어서면서 묻히고 말았다네
장릉 공원묘지로 성묘나 벌초하러 가기 싫은 게으른
자식들이
길 막혀 올해는 못 간다고
이 핑계 저 핑계로
둘러대던 핑계다리 팽계다리 평교
밋밋한 고속도로를 질주하며 옛 자리를
둘러보며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누군가는 뜻 모를 그런 핑계를 댈 것 같은 저녁
평교는 어디 또다른 세상에서
이쪽과 저쪽의 삶을 이어주고 있을까
- 박철 시집 『험준한 사랑』(창비, 2005)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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