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이영춘] 방房의 이중법

문근영 2011. 12. 26. 20:15

방房의 이중법

 

이영춘

 

 

 때로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면 마치 내가 관속

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관 속 천장에서 들리는 소리, 소리들의 고요,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  내 맥박 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창 틈새로 햇살 지나가는 소리, 얼마

전 이 지상의 문을 닫고 떠난 한 시인의 눈물 흐르는

소리, 그 눈물에 젖어 드는 잔디, 검은 잔디의 묘지, 묘

지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 그 문으로 또 누군가가 들어

가는 소리…

 

 화들짝 놀라 '의식'이라는 거울 조각을 흔들어 깨고

나와 보니 나는 곰인형처럼 방 한가운데 동그랗게 누

워 있다.

 

 동그란 형광등 눈알이 목사님의 그윽한 눈빛처럼 나

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내가 관인지 관이 나인지 알 수 없는 장자의 나비처

럼, 그렇게

 

 

 

-시집『봉평 장날』(서정시학,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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