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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유종인]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문근영 2011. 12. 26. 20:12

 

사랑은 현물(現物)이니

 

 

 

유종인

 

 

더듬어봐라

숨 놓고 얻게 된 푸른 무덤

오랜 돌비석에 새겨진 당신 이름에

흰 똥을 갈기고 가는 새들이 짧은 영혼을 뒤돌아보겠는가

 

당신을 품은 무덤도 당신 모르고

당신 이름을 새긴 돌비석도

당신 모르는데, 사랑은

미나리아재비과(科) 독성 품은 풀빛에도 기웃거린다

아연실색, 제 몸빛조차 모르고 흔들리다,

사라진다

 

더듬어봐라

사랑은 현물이니

맘에 담아 이리저리 말로 꿰려는 이여,

깨어진 돌비석에 역시 깨어진 당신 이름이여

한 이름 둘로 나뉜 비석 돌에 여전히 흰 똥을 떨구고 가는 새들,

성큼 자라오른 가시엉겅퀴 그림자가

깨진 당신 돌 가슴을 겁탈하듯 한나절 끌어안다 가는 것을

 

 

 

 

-시집 『사랑이라는 재촉들』(문학과지성사,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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