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房의 이중법
이영춘
때로 방안에 가만히 누워 있을 때면 마치 내가 관속
에 누워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관 속 천장에서 들리는 소리, 소리들의 고요,
째깍째깍 초침 돌아가는 소리, 내 맥박 뛰는 소리,
물 흐르는 소리, 창 틈새로 햇살 지나가는 소리, 얼마
전 이 지상의 문을 닫고 떠난 한 시인의 눈물 흐르는
소리, 그 눈물에 젖어 드는 잔디, 검은 잔디의 묘지, 묘
지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 그 문으로 또 누군가가 들어
가는 소리…
화들짝 놀라 '의식'이라는 거울 조각을 흔들어 깨고
나와 보니 나는 곰인형처럼 방 한가운데 동그랗게 누
워 있다.
동그란 형광등 눈알이 목사님의 그윽한 눈빛처럼 나
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내가 관인지 관이 나인지 알 수 없는 장자의 나비처
럼, 그렇게
-시집『봉평 장날』(서정시학,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가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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