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박성우] 고라니

문근영 2011. 12. 23. 10:38

고라니

 

 

박성우



산마루 넘어가던 눈발들이
그만 쉬어가자 쉬어가자,
산마을에 든다

더는 못 가겠다고
절벅절벅 주저앉는 눈발들

가쁜 숨을
가쁜 걸음걸음을
산마루에 부린다
하루 건너 사흘 나흘 닷새
길은 끊기고

밤새 고라니가 다녀갔다

똥글똥글
콩자반 같은 똥을
상사화 지던 처마 밑에
찔끔 누고

무청도 언 배춧잎도
없는 사내의 집을
순하게 다녀갔다

까마득 고픈 눈빛만
말똥말똥
까맣게 두고 가서

눈발도 그만 순하게 지나갔다

 

 

 

 

-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창비, 2011)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전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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