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조용미] 소리의 음각

문근영 2011. 12. 23. 10:42

 

 

소리의 음각

 

조용미

  

 

소리는 왜 발자국이 없는가 물처럼 흐르기만 하는가

당신의 목소리가 음각된 곳은 어디일까

 

눈을 감고 당신의 목소리를 귓바퀴로 감는 순간들

흐린 새벽 비의 예감과 간밤의 둥근달과

건기와 우기가 목소리의 진자를 통해

 

귀의 가장 안쪽을 거쳐 백회와 눈꺼풀까지 스며들 때

이 음각은, 돋을새김보다 섬세하고 머나먼 나선형의 세계는

 

보랏빛 그늘이 섞인 어둠 속에서 눈부심의 뒤편에서

호흡할 수 있는 연약한 것들의 숨결

삼각와의 골과 만곡을 거쳐 물결처럼 번지며

 

잠을 깨우는 소리의 파동들

달팽이관까지의 수많은 산과 들과 개울을 지나

마침내 당신의 손은 내게 도착한다

 

음각의 저 안쪽을 돋을새김으로 만져보는 이는 누구일까

 

소리의 물결에 잠긴 채 끝없는 계단을

철썩이며 돌아 내려가는

푸른 몸은 어디까지 깊어지려는가

  

 

 

―『2011 소월 시문학상작품집』(문학세상, 2011)

                                  

 

 

▶조용미

1962년 경북 고령 출생, 1990년 《한길문학》으로 등단.

시집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일만 마리 물고기가 山을 날아오르다』『삼베옷을 입은 자화상』『나의 별서에 핀 앵두나무는』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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