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이은봉
더는 뜻 세우지 못 하리 더는 어리석어지지 못 하리 더는 천박해지지 못 하리 더는 사랑에 빠지지 못 하리
더는 술 취해 길바닥에 나뒹굴지 못 하리 더는 비 맞은 초상집 강아지 노릇 못 하리
가을이 오면 호박잎 죄 마르는 거지 늙어빠진 알몸 절로 불거지는 거지 담장 위 누런 호박덩어리 따위 되는 거지
그렇게 가부좌 틀고 앉아 유유히 세상 내려다보는 거지 가난한 마음 더욱 가난해지는 거지.
―시집『첫눈 아침』(푸른사상, 2010)
▶이은봉=1953년 충남 공주 출생.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 한국작가회의 부이사장. 시집 '절망은 어깨동무를 하고' '무엇이 너를 키우니' '길은 당나귀를 타고' '책바위' 등. 한성기문학상, 유심작품상 수상.
쉰은 엄청 많은 나이인줄 알았다. 쉰은 다 산 나인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쉰이 되고 보니 마음은 아직 열여덟이다. 그런데 세상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젠 그러지 말아라. 이젠 그런 짓 말아라. 이것도 이젠 그만. 저것도 그만. 나는 아직 열여덟인데. 이제 다시 산을 일구고 과일나무를 심으려는데 다 늦었단다. 아니다 늦다고 생각한 때가 가장 이른 때이다. 다시 사랑에 빠져보자. 술에 취해 나뒹굴어보자. 아직은 할 수 있다. 성선경·시인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보리향(菩提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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