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서생포 왜성(西生浦倭城)

문근영 2011. 9. 24. 10:16

 

  외성(外城)의 경우 바깥쪽에만 돌로 쌓는 내탁식(內托式) 城

 

  ①內城主 출입구 전면

 

 

①內城主 출입구 배면

 

 

 

 

 

  내성(內城)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하였다.

 

 

 ⑭출격용 소곽

 

  16되형 출입구

 

 

  왜성에서 내려다본 진하 明仙島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     울산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 일원  
                                       

이 성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일본식 석성(日本式 石城)으로서 계단식으로 쌓았다. 

회야강 강구의 작은 포구를 끼고 해발 133m 고지의 산정(山頂)에 내성(內城)을 쌓고

동쪽 경사면을 이용하여 2단, 3단의 부곽(副郭)을 두었으며,
그 아래로 산아래까지 점차 길고 넓어지는 외성(外城)을 배치하였다.

성벽 밖에는 2, 3중으로 호(壕)를 둘렀다.

성곽의 전체면적이 46000평에 이르며 성 외곽부의 길이가 약2.5km이다.

성벽은 외성(外城)의 경우 바깥쪽에만 돌로 쌓는 내탁식(內托式)이며

내성(內城)은 안과 밖 모두를 돌로 쌓는 협축식(夾築式)으로 축조하였으며,
기울기는 지면에서 60도 내외이다.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1594년 사명대사(四溟大師)께서 4차래에 걸쳐 이곳에 오셔서

평화교섭을 하여 많은 외교적 성과를 거둔 곳이다.

 

★내성(內城)
①內城主 출입구
②되형 출입구
③돌출형 소곽
④내성부 출입구
⑤직진형 출입구
⑥되형 출입구
⑦산정부 소곽
⑧굴절성벽
⑨밭이랑형 호(壕 해자.성을 둘러싼 못)
⑩엇물림형 출입구
⑪산정부 중심곽
⑫天手台
⑬엇물림형 출입구
⑭출격용 소곽
⑮되형 출입구
16되형 출입구
17석루(石壘)
18흙다리(土橋)
19호(壕) 해자
20최전방 소곽
21지형절개형 호(壕)
22흙제방

외성(外城)

①선착장 추정지
②되형 출입구
③전면 2단석축
④외성 주출입구
⑤경사면 성벽
⑥호(壕)
⑦체성(體城)
⑧창표당터(蒼表堂址)임진왜란 功臣56位 英靈 追慕 매년 양력 11월 19일 祭禮
⑨계단형 소곽
⑩주통로

 

 

출처 : 참 나를 찾아 산사로의 여행
글쓴이 : 木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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