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茶山의 두 아들 / 박석무

문근영 2011. 4. 28. 11:00



284
 
 

茶山의 두 아들 


다산 자신의 기록으로 보면 다산은 부인 홍(洪)씨와의 사이에서 6남3녀를 낳았으나 모두 잃고 겨우 2남1녀인 3남매만 키웠다고 했습니다.

몇 년 전에 어떤 중학생이 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의 독후감을 읽어보니 유배지에서 아버지가 그렇게 훌륭한 충고와 가르침을 보냈는데, 그런 편지를 읽은 다산의 두 아들은 반드시 훌륭한 인물로 성장했어야 되는데, 지금 그렇게 알려진 아들이 없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했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버지 다산이 너무 큰 인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두 아들 역시 매우 훌륭한 학자이자 문인들이었지만 아버지에 가려 크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아는 사람은 알고 있듯이, 두 아들에 관해서 시간이 지날수록 저서들도 발견되고 숨겨진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유명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큰 아들 정학연(丁學淵:1783-1859)은 호가 유산(酉山)으로 시인으로 큰 명성을 얻었던 분이자 비록 낮은 벼슬이지만 몇몇 벼슬도 지냈고 당대의 명인들과 교유하면서 많은 문필을 저술했건만 전해지는 것이 적었습니다. 최근 일본에서 시집이 새로 발견되어 이름이 더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遊:1786-1855)는 호가 운포(耘逋)로 「농가월령가」의 저자로 알려진 분이기도 하지만, 추사 김정희와 초의선사 등과 동갑나기로 자신의 형인 유산과 함께 조선왕조 말엽 시와 문학, 학문과 사상을 심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던 지식인이었습니다.

추사 김정희가 황상(黃裳)이라는 다산의 제자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둘째아들이 얼마나 훌륭한 인물인가를 그냥 알 수 있습니다.

“운포가 오랜 병으로 지난 설 전부터 신음하더니 마침내 이달 초하룻날 세상을 떠났네. 이처럼 못된 세상에 이러한 인물을 어디서 다시 보겠는가”(耘逋 以夙恙自臘前沈 竟於今月初一日 化爲異物 如此末俗 如此人何處更見耶)

세상에서 다시 보기 드문 인물이라고 추사가 평했으니 그 훌륭함을 알아보기 쉽습니다. 아버지의 큰 산에 가리운 아들에 대한 이해도 넓혀야만 할 것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