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16일자 중앙일보는 “이공계 위기라더니…인문대는 더 심각”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1면 머리글로 실었다. 서울대를 비롯한 대부분의 대학에서 학생들이 인문계를 기피하고, 입학의 편의를 위해서 인문계에 들어간 후에도 법대, 경영대 등으로 전과하는 학생이 많다는 내용이었다. 지방대학은 사태가 더 심각해서 철학과, 역사학과 등을 폐과하는 대학이 늘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실었다.
또 최근에는 서울대의 유안진 교수가 정년을 1년 남기고 명예퇴직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가르치는 것에 대한 열정이 사라졌다”는 것이 퇴직의 이유였다. 서울대 국문학과의 이병근 교수도 몇 년 전, “대학이 재미가 없어서…”라는 말을 남기고 명예퇴직했다. 이외에도 인문계 교수들의 명예퇴직이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도 명예퇴직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이렇게 학생들도 인문계를 기피하고, 인문계 교수들도 “열정이 사라져” 명예퇴직을 신청하는 것이 오늘날 대학 인문계 학과의 현실이다.
가르침에 열정 잃은 인문학 교수들 늘어나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매우 복잡하다. 그리고 그 해결 방안도 간단히 제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른바 ‘인문학의 위기’에 대하여 수많은 논의가 있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여전히 인문학을 외면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리는 교수들이 나날이 늘어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해준다.
그래서 지금은 인문학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인문학이 무엇이며 인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한 본원적인 검토가 진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인문학(人文學)은 인문(人文)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면 인문은 무엇인가? 인문이란 용어가 최초로 사용된 출전은『주역(周易)』이다.『주역』비괘(賁卦)의 단사(彖辭)에 이렇게 씌어 있다.
천문(天文)을 관찰함으로써 사시(四時)의 변화를 살피고, 인문(人文)을 관찰함으로써 천하를 교화시킨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
정자(程子)는 인문을 “인리(人理)의 질서”라 해석했다. 인리란 인간의 도리이다. 그러므로 “인리의 질서”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수행하기 위한 질서라 말할 수 있다. 이 질서가 인간사회를 유지하는 기본 법칙이다. 천문을 연구하는 학문이 천문학이듯 이러한 인문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인문학이다.
인간의 무늬, 인간다운 삶에 대한 학문이거늘 그리고 ‘文’이란 글자는 원래 무늬 또는 문채의 뜻을 가지고 있다. 이 무늬는 사물 고유의 속성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다. 하늘의 무늬(天文)는 해와 달과 별이다. 해와 달과 별이라는 무늬가 없으면 하늘이라 할 수 없다. 해와 달과 별은 하늘을 하늘이게끔 해주는 하늘 고유의 무늬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에게도 인간 고유의 무늬(人文)가 있다. 그러므로 인간인 이상 인간 고유의 무늬인 인문이 있어야 한다. 인문이 없으면 인간이 아니고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러면 인간의 고유 무늬는 과연 어떠한 것인가? 공영달(孔潁達)은 시서예악(詩書禮樂)을 인문이라고 했다. 이때의 시서예악은 포괄적인 개념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윤리와 행동규범을 규제하는 전거로서의 대표성을 지니는 개념이다. 시서예악은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인간 고유의 무늬이다. 종합해서 말한다면,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학문이고 인간의 삶의 질에 대한 학문이다. 결국 인문학은 인간다운 삶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학문이라 정의할 수 있다.
호랑이에게는 호랑이의 무늬가 있고 기린에게는 기린의 무늬가 있듯이 인간에게는 인간의 무늬가 있다. 이 인간의 무늬를 연구하는 학문이 인문학인데, 요즈음 학생들이나 정책 입안자들이나 모두 인문학을 외면하고 있다. 따라서 인문학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들도 흥미를 잃고 교단을 떠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의 무늬가 퇴색하여 언젠가는 인간이 호랑이나 기린의 무늬를 뒤집어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