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다산과 녹암(鹿菴) 권철신(權哲身) / 박석무

문근영 2011. 4. 29.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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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녹암(鹿菴) 권철신(權哲身) 


한국에 두 번째의 추기경이 탄생되었다고 카톨릭교계만이 아니라 온 나라가 경사롭게 여기고 있습니다. 국력의 신장과 천주교의 성함에서 오는 국가의 경사로 모두가 기뻐할 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1801년 바로 200여 년 전에 일어난 신유교옥(辛酉敎獄)의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회고해보면 기막힌 아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최고 수준의 경학자이자 실학자이던 녹암 권철신(1736-1801)과 정헌(貞軒) 이가환(李家煥 : 1742-1801)은 성호 이익의 학문과 사상의 후계자였으나 천주교도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옥사하고 죽은 뒤에는 저자에 목을 베어 공개하는 효시(梟示)까지 당했던 비운의 학자들이었습니다.

“천주교 서적이 들어오자 권철신의 아우 권일신이 맨 처음으로 형벌을 받는 화를 만나 임자(1792)년에 죽었고, 온 집안이 모두 천주교에 물들었다는 지목을 받았으나 녹암이 그것을 금할 수도 없어서 역시 신유(1801)년 봄에 죽음을 당했으니 마침내 학문의 맥이 단절되어 버렸고 성호 학통의 아름다움이 다시 이어갈 수 없게 되었으니 이거야말로 세상의 운(運)에 관계되는 일이지 한 집안만의 비운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녹암권철신묘지명(鹿菴權哲身墓誌銘)」

1818년 강진에서 해배되어 고향에 돌아온 다산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사형당한 선배 학자의 일생을 「묘지명」이라는 글로 1822년경에 저술했습니다. 천주교 신자도 아니었는데 아우나 가족들이 신자라는 이유로 함께 싸잡아 그런 대학자를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 다산의 결론입니다.

백호(白湖) 윤휴(尹 )로부터 이어지는 반성리학적인 학문체계를 세워 다산에게 전수해주었던 학자가 녹암이었습니다. 명덕(明德)을 효제자(孝悌慈)로 여겨 성리학의 체계에서 실학의 체계로 대변혁을 일으켜 다산학의 기초를 닦아준 분이 녹암이었습니다. 천주교도가 아니면서도 천주교도로 몰려 죽어간 녹암을 생각하다 새로 탄생한 추기경을 경사로 맞는 오늘과 대비되어 녹암의 이야기를 해보았습니다.

천주교도로 누명을 쓰고 18년의 귀양살이를 피할 수 없었던 다산의 일까지 겹쳐 역사의 아이러니를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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