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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남 1녀만을 길러낸 다산부부는 본디는 세 딸을 낳았으나 어려서 잃고 딸 하나만을 키워 시집보냈습니다. 그 어린 딸이 귀양살이 떠날 때야 아버지도 알아보지 못하던 어린이였지만, 귀양살이 12년째이던 1812년에는 다산의 평생 친구이던 윤서유(尹書有:1764-1821)의 아들인 윤영희(尹榮喜, 다른이름 昌模)에게 시집갔습니다. 시집갈 때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려준 것이 그 유명한 ‘매조도(梅鳥圖)’ 바로 그것입니다.
다산은 어떤 기록에도 따님의 인품이나 글 솜씨 및 사람 됨됨이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아 알 수는 없지만, 장기의 유배지에서는 어린 딸이 생각난다는 시를 지은 적도 있습니다. 매조도를 보면 필연코 글도 잘하고 훌륭한 인품의 소유자였으리라는 짐작은 되지만 정확하게 알 길은 없습니다.
사위 윤영희는 10대에 유배살던 다산초당에 들어와 다산에게 글을 배워, 큰 벼슬은 못했지만 진사과(進士科)에 급제하여 선비로서의 이름은 높은 분이었습니다. 외동딸의 시아버지 윤서유는 글 잘하는 큰 학자로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정언(正言)의 벼슬까지 지낸 분이었습니다.
외동딸의 아들, 곧 다산의 외손자인 윤정기(尹廷琦 : 1814~1879)는 호가 방산(舫山)으로 어려서부터 외할아버지 다산의 무릎아래서 글을 배워 당대의 학자로 성장했던 분입니다. 이른바 다산풍의 실학자로서 높은 수준에 올랐고 당대의 명사들과 교유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큰 명성을 얻었으며, 중국의 학자들과도 교유하여 중국학자들에게서도 큰 칭찬을 받았던 학자였습니다. 문학·역사·경제·지리 등 모든 분야에 밝았을 뿐만 아니라, 외할아버지의 유풍을 이어 경학(經學)에도 뛰어나 방대한 저술을 남겼습니다.
아들 딸을 보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 수 있듯이, 방산을 보면 어머니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방산의 큰 학문으로 보아 다산의 외동딸도 만만찮은 인물이었을텐데, 전하는 것이 없어 아쉽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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