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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성리학(性理學)과 다산학(茶山學) / 박석무

문근영 2011. 4. 24.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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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性理學)과 다산학


우리 다산연구소는 다산의 실학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타락하고 병든 세상을 개혁하고 바꾸며, 그가 그렇게도 강조했던 청렴사상을 확대하여 깨끗한 공직사회를 이룩하자는 주장을 계속 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산으로 깨끗한 세상을!’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여러 가지 사업을 펴기도 하지만 다산사상의 진수가 무엇인가에 대한 연구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송(宋)나라 주자(朱子)이래로 동양사상의 중심에 있었고, 특히 조선왕조 500년 동안에는 정치적 이념으로까지 대접받던 성리학은 나쁘고 다산의 실학사상으로 윤색된 ‘다산학’만 옳다고 여긴다면 그것은 정말 잘못된 판단입니다. “성리학은 도(道)를 알고 자신을 알아서 올바른 도리를 실천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역경(易經)』에 ‘사물의 이치와 인간의 본성을 끝까지 강구하여 천도(天道)에 합치되게 한다’고 하였고, 『중용(中庸)』에는 ‘자신이 부여받은 본성(本性)을 다 알면 남의 본성도 다 알 수 있음은 물론 만물의 본성까지도 알 수 있다’고 하였고, 『맹자(孟子)』에는 ‘마음을 다 아는 사람은 그 본성을 알게 되고 그 본성을 알게 되면 천도를 알 수 있는 것이다’라 하였으니 성리학이 여기에 근본한다.” 다산은 「오학론(五學論)」에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요즘, 다산이 살던 시대의 성리학자들은 이(理)니, 기(氣)니, 성(性)이니, 정(情)이니, 체(體)니, 용(用)이니 하는가 하면, 본연(本然)이니 기질(氣質)이니 이발(理發)이니 기발(氣發)이니 이발(已發)이니 미발(未發)이니…하면서 잎새와 줄기가 수천수만으로 갈려져 있다며 실용(實用)에 아무런 쓸모없는 논의로 규정하여 당시의 성리학 풍토를 철저하게 배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당시의 학문 경향에 확고한 반대를 했을 뿐, 본질적이고 본원적인 성리학 자체의 무용(無用)을 주장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리학은 나쁘고 다산학만 좋다는 것이 아님은 여기서 분명합니다. 모든 경전을 성리학적으로만 해석한 그 점을 반대하고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맞도록 실용성이 있게 경전을 새롭게 해석했던 것이 다산학이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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