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함께읽기

[스크랩] 다산의 아버지 - 1 / 박석무

문근영 2011. 4. 23.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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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의 아버지-1


아버지를 보면 아들을 알고, 아들을 보면 아버지를 알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훌륭한 아버지는 대체로 훌륭한 아들을 길러낼 수 있고, 그렇지 못한 아버지는 아들도 훌륭하게 키울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모를 보고 자라는 것이 자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긍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산의 아버지는 정재원(丁載遠 : 1730~1792)이라는 분으로 자(字)는 기백(器伯)인데 당대의 남인 정승이던 번암(樊巖) 채제공(蔡濟恭 : 1720~1799)과 매우 가까이 지냈던 유수한 문인이자 관료였습니다. 33세이던 해, 즉 다산이 태어났던 1762년에 진사과 급제했으나 과거에는 급제하지 못하고 벼슬아치 집안의 후예라는 덕분에 음직(陰職)으로 많은 벼슬을 지냈습니다. “나의 선친께서 임금의 신임을 받아 두 고을의 현감(縣監), 한 군의 군수(郡守), 한 부의 도호부사(都護府使), 한 주의 목사(牧使)를 지내셨는데 모두 치적이 있었다”(『牧民心書』) 라는 다산의 글대로 지방관으로는 높은 진주목사(晋州牧使)를 역임할 정도였으니 관료로서는 성공한 분임에 분명했습니다.

아홉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31세에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보내야 했지만, 다산은 특별히 어떤 선생을 사사(師事)하여 글을 배운 적이 없고 대부분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 시를 익히고 경전과 사서(史書)를 공부했다고 자신이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아버지의 문식과 학문이 어느 정도였나를 대강 짐작할 수 있습니다.

채제공이 아버지보다 10세의 연상이었으나 훨씬 오래 살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다산 형제들은 채제공을 찾아가 아버지의 일대기인 묘갈명(墓碣銘)을 받았습니다. 이른바 정재원에 대한 정사(正史)인데, 거기서 못 다한 이야기들은 다산이 손수 지은 「선인유사(先人遺事)」라는 글에 잘 묘사해놓았습니다. “법도가 정연하고 질서가 있는 삶을 사셨다”, “빈객을 좋아하여 집에는 손님이 늘 가득하였다” 등등 아버지의 넉넉한 인품과 생활철학 및 견고한 선비의 모습을 잘 표현했습니다. 시부시자(是父是子), 그 아버지에 그 아들임을 그런데서 알 수 있습니다.

박석무 드림

출처 : 이보세상
글쓴이 : 이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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