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단한 애국자였던 다산은 자신이 당하던 유배살이라는 극한적인 고통도 잊고 나라를 건지고 백성들이 가난에서 벗어나는 일에 더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해내고자 망국의 그림자가 감지되던 나라, 썩고 병든 나라를 개혁하여 나라의 근본이 튼튼한 나라로 만들기 위한 온갖 방책을 담은 방대한 실학관계 저서를 완성했습니다.
부패와 부정을 방지할 법과 제도를 개혁하고 목민관들의 마음을 돌려 청렴한 공직자로 바꾸면 되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그런 모든 것의 근본에는 인간의 사유체계(思惟體系)를 본질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는데 가장 큰 목표를 두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가 232권이 넘는 호한한 경학(經學)관계 저술에 온 정력을 바쳤던 것으로 보아 넉넉히 짐작이 되는 부분입니다.
주자(朱子)이후의 성리학자들이 매몰된 관념의 세계, 즉 이(理)라는 사유의 틀에서 벗어나,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경험의 바탕으로 사유의 틀을 변화시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정자(程子)나 주자가 ‘성즉리(性卽理)’라는 대명제를 표방한 이래, 이(理)라는 관념의 세계가 아니고는 이단(異端)으로 몰아붙이던 교조주의적 생각의 틀을 유배인의 신분으로 거부를 선언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산은 과감하게 “성(性)이라는 글자가 되는데는 당연히 꿩의 성품, 사슴의 성품, 풀의 성품, 나무의 성품처럼 읽어야 하므로 본디 기호(嗜好)라는 것으로 이름이 세워졌으니 높고 멀며 넓고 큰 것만으로 말해서는 안된다”(性之爲字 當讀之如雉性鹿性草性木性 本以嗜好立名 不可作高遠廣大說也)(『心經密驗』)
다산의 경학은 이렇게 시작되어 하늘에서 구름잡는 논리의 세계를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제의 세계로 끌어내려 생각의 틀을 바꾸자고 선언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경학의 체계를 새롭게 구성하고 해석해서 생각이 바뀌면, 그때에야 법과 제도를 개혁하는 경세학(經世學)으로 발을 옮기자고 했습니다.
정치를 하건, 기업을 하건, 학문을 하건 생각의 틀을 바꾸는 일이 우선 먼저 해야 할 일임을 다산에게서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박석무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