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을 찾아서

[스크랩] 구미 신라불교초전성지 모례원.모례정.벅수.

문근영 2011. 1. 18. 10:04

 

  신라불교초전지마을  모례마을

 

  모례교를 건너면 미완성작으로 보이는 벅수가 세워져 전해온다.

  전체 키높이: 180cm.폭:상 70,하 85cm.   두께 24-43

 

   벅수의 머리.  높이:26cm,  폭:22cm

 

  선돌(140-56cm)  과일밭속 풀이 우거진 둑위에 세워져있다.

 

  모례우물의 상면

 

 

  상면이 우물정(井)자형으로 잘다듬어지지않은 석재판으로 짜여져있다.

 

  우물내부

 

  아도모례원.  2층은 법당.

 

  신라불교초전법륜성지    불심 도문

 

  석가여래께서 법륜을 ... 2008년 법당에 봉안

 

  금구

 

  신라불교초전기념관

 

 

  해우소

 

아도모례원 (阿度毛禮園)      경북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龜尾市 桃開面 道開2里)  369  

아도모례원(조실 불심도문) 대불 점안식 봉행 및 주지 법장스님 진산식…요사채 낙성식이 2008년 8월21일  열렸다
아도모례원의 ‘아도’는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처음 전한 초전법륜성지라는 의미를 담은 것이며

 ‘모례’는 신라 최초의 불자인 ‘모례’를 일컫는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불교가 공인이 되기 전 신라에 불교를 전파하기위해

아도모례원이 소재한 도개리에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모례장자가에 머슴살이를 하면서

포교 활동을 하고 노임으로 도리사를 창건했다고 하며, 유적으로 모례장자우물이 있다.

 도개리 340-5번지에는 벅수(키높이180, 폭 70-84, 두께 24-43, 얼굴크기 22-26cm). 선돌(140-56cm)1기가 세워져 전해온다.

 

역사기록
삼국유사 아도기라 신라본기(阿度基羅 新羅本紀)에 의하면 신라 제19대 눌지(訥祗)왕시대에 묵호자 사문(墨湖子沙門)이

신라 일선군 모례장자(毛禮長者)의 집에 오셨다.

모례장자는 묵호자 사문을 맞이하여 집안에 굴실을 만들어 편히 지내게 하였다.
그런데 공주가 병이 들어 백약이 무효인데 그 병을 고쳐주고 얼마 후 간곳을 알수가 없었다한다.

 

또 신라 제21대 비처(毘處) 대왕시대에 아도화상(阿度和尙)이 시자 3인(侍者3人)과 함께 역시 모례장자의 집에 오셨는데

묵호자 사문과 똑 같았다고 한다.
아도화상이 수년을 지난 후 병도없이 입적하시고 시자3인(侍者3人)이 그대로 머물러 있으면서

경장(經藏)과 율장(律藏)을 강설하여 독송하니 왕왕히 믿고 받드는 자가 있었다.

이것이 신라불교의 시초이다.
그러기에 신라불교 초전법륜성사는 아도화상이시고, 초전법륜성지는 모례장자의 구지(舊址)이다.

독립운동가 33인 중 한분이신 용성진종조사께서 23세 되시던 해인 서기

1886년 음력 8월 29일 이곳에서 오도(悟道)하신곳이다.


★삼국 불교 전래
고구려: 17대 소수림왕 2년 서기 37년 순도                    375년 서운사 이블란사 창건.
백제  : 15대 침류왕  원년 서기 384년 마라난타               384년 모악사 불갑사 창건.
신라  : 23대 법흥왕  14년 서기 527년 이차돈의 순교. 공인후 흥륜사 창건.   19대 눌지왕(417-458)원년 도리사 창건.
             흥륜사는 이차돈의 순교와 불교 공인(527년) 직후에 창건된(진흥왕 직위년·544년) 신라의 첫번째 사찰로 알려져 있다.
             흥륜사 터는 일제시대 때 경주공고 남쪽 800m 떨어진 곳으로 알려져 사적 15호

 
우리나라에 불교가 처음으로 전해졌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고구려 소수림왕(불기 915, 서기 372)이 중국의 전진왕으로부터 불상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인도 출신인 가야국의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로부터 불교를 직접 가져왔다는 학설도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소수림왕 이전에 이미 불교가 우리나라 에 뿌리내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백제는 불기 928년(서기 384) 침류왕 때 동진의 마라난타에 의해 불교가 전래되었다.
특히 백제는 일본에 불교와 선진문물을 전해줌으로써 일본 고대사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신라에는 고구려 묵호자에 의해 서기 417년에 불교가 전래되었으나,

서기 527년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가 승인되었다.
 

★ 傳 毛禮家 井      경상북도 구미시 도개면 도개리 978번지
이 우물은 도개리 마을 중앙에 위치하는데, 신라 최초의 불교 신자인 모례(毛禮)의 집에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우물은 직사각형의 석재를 지상에 가설하였으며, 큰 독 모양으로 돌을 쌓아 만들었다.
우물의 깊이는 m이고 둘레는 둥근형으로  가운데의 배가 부르고 상하가 좁은 형태이다.
밑바닥을 두꺼운 나무판자로 깔아 만든 것이 특징이다.
 우물이 만들어진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모례샘 (毛禮井) 설화
신라불교의 전법(傳法)에 실패한 아도화상(阿度和尙)은 도개리 모례장자(毛禮長者)의 집에 돌아와서

사문(沙門) 신분(身分)을 변장하기 위해 머슴살이를 하면서 양 1000마리, 소 1000 마리를 길러 모례장자를

거부가 되도록 하였으며, 아도(阿度)는 이렇게 5년간 보살행을 하고 냉산(冷山 현太祖山)으로 떠나려고 하였다.

 

이때 화상은 그동안 일해준 품삯을 한푼도 받지않았다.

모례는 화상이 떠나려하니 울먹이면서 아도의 가는길을 물었으나 가는곳을 알리지 않고 다만 나를 만나려면
얼마후 당신집으로 칡순이 내려올것이니 그 칡넝쿨을 따라오면 나를 만날 수 있을것이오 하고 말한후 떠나버렸다.

 

그 후 아도의 예언처럼 정월(正月) 엄동(嚴冬)인데도 칡순이 모례장자집 문턱에 들어오므로 모례는 곧 그

줄기를 따라가니 바로 지금의 냉산 태조산 산복(山腹)인 도리사 자리에 아도가 수행 정진하고 있었다.

두사람은 1년만에 해후한것이다.
이때 아도는 모례장자를 보고 이곳에 신라최초가람(新羅最初伽藍)을 세울테니 시주를 좀 하시오, 하고

망태기 하나를 내놓으면서 망태기 속에 쌀을 채워달라고 하였다.

모례도 흔연히 아도의 청에 승낙하고 그 망태기속에 채우려고 쌀을 100섬 나아가 1000섬을 부었을때 그

망태기가 차자 아도가 그것을 가지고 가서 절을 창건하자 지금의 도리사가 이루어졌다.

바로 이곳이 신라불교의 초전법륜지(新羅佛敎初傳法輪地) 이고 최초사원(最初寺院)이 되었다.

 

지금도 모례부근에는 아도가 양 1000마리 소 1000마리를 기른 곳이라하여 주민들의 소골(牛谷)이라 부르는 마을이 있으며

모례장자터의 모례우물을 먹었다는 모례샘이 있다.


 

출처 : 참 나를 찾아 山寺로의 여행
글쓴이 : 木 石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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