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천산은 나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30년 전 아직 등산로가 변변이 개설되지 않을 때부터 이 산을 올랐을 뿐만 아니라 가을이면 그림을 그리려, 눈이 오면 사진 찍으려 깊고 한적한 골짜기를 어슬렁거리기도 했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젊은 시절, 곱지만 화려하지 않고 깊지만 어둡지 않고 작으면서도 큰 산에 뒤떨어짐이 없는 절묘한 풍경에 흠뻑 빠져 버렸던 것이다.
내장산이 성장한 여인네의 화려함이라면 백양골은 중후한 중년의 깊은 멋이 있고 이곳 순창은 마음을 열어주지 않는젊은 연인의 풋풋한 맛이 있다. 그래서인지 강천산은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연인의 품처럼 정겹고 포근하다. 오랜 세월 잊고 살다가도 어느 날 문득 떠 오르면 그 시절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고 싶은 그런 연인같이 말이다.
남도 단풍산을 고르라면 이웃의 내장과 백양과 함께 강천 또한 그 격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곱던 단풍이 내장에서 먼저 화려함을 접고 백양도 따라 지고 나서도 강천의 애기단풍은 늦 가을 까지 곱게 피어있다. 가을이 물러갈 때 즘, 단풍 구경을 놓친 사람들에게 마지막 정분을 남겨 주고 있는 곳이 강천산이다.
지금 강천산은 순진하고 소박하던 옛 멋을 잃어버리고 자꾸만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군립공원인 덕에 조금이라도 더 관광객을 끌어 모으기 위해서인지 해마다 새로운 시설물을 설치하고 치장하고 가꾸며 편의시설을 확충고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지난 날 숫처녀 같던 강천산이 자꾸만 그리워진다. 인공이 아무리 좋다 한들 자연만큼이나 할까 하는 아쉬움이 많다.
인공폭포와 편의시설물들 (강천산 계곡을 아 것 말고도 수 없이 많다 맨발로 걷기 위해 모래를 깔아 두는 일이나 인공호수나 지압통행로나 탁족시설과 정자와 의자들이 그것이다)
가을 볕이 좋은 날 강천산을 다녀 왔다. 남아있는 단풍의 잔영이라도 얻어볼까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카메라를 챙겨 나섰던 게 그만 힘든 산행을 하고 말았다. 구름다리를 건너 팔각정을 올아 내친 김에 광덕산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어렵게 생각지 않았더니 신성봉, 광덕산을 비롯 오르내림이 심한 봉우리들이 많아 생각보다 힘이 들었다. 광덕산에서 바라본 강천 계곡을 가히 일경이었다. 건너편 시루봉에서 북바위, 송낙바위까지 이어지는 산성산의 자태가 제법 우람했고 솔숲과 마른 활엽수 사이에 촘촘히 박혀있는 단풍이 늦 가을 분위기를 살려내고 있었다.
시루봉을 돌아드니 성벽이 가을 볕에 등을 말리며 따스하게 누워있었다. 산성산은 이 성벽을 타고 오르는 재미가 좋다. 동문에서 바로 내리려다 내친 김에 송낙바위까지 휘돌아 연대계곡을 타고 내려 왔다. 20년 전이던가? 어렵게 길을 개척하듯 오르던 날 어느 시골 촌부 내외가 건네주던 으름이 떠올랐다. 아마 약초를 캐고 버섯을 따면서 생활했을 법한 그 분들이 전해준 으름은 마치 작은 바나나같았는데 쫙 벌어진 속살과 달콤하던 맛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강천산 일화 중 가장 인상 깊은 이야기이다. |
나무들은 벌써 잎을 떨쿤지 오래지만 산자락과 계곡에는 늦둥이 단풍이 마지막 고운 자태를 뽐내고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강천산하면 내 뇌리에는 깨끗하다는 것, 청결하다는 것, 자갈까지 비치는 맑은 개울 물과 휘어지듯 아름다운 애기단풍들로 기억되어 있다. 그리고 계곡을 휘돌아 위압하듯 서 있는 병풍바위, 송음바위, 부처바위, 장군 바위 등 수직의 암벽들은 이 산만의 절경일 것이다.
비록 산은 낮아도 떡갈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들의 황색과 어우러져 틈틈이 박힌 고운 단풍이 더욱 화려하게 느껴져 늦 가을 찾아 떠나는 단풍 명소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계곡을 빠져 나오며 아쉬운 듯 자꾸만 뒤돌아 본다.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애인같은 산 하나 가슴에 품고 사는 것도 좋은 일이 아닐런지~~~
2007. 11. 13 Fo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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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으시는 곡은 찬립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저 구름 흘러가느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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