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었습니다. 장마와 뙤약볕을 이겨내고 결실 맺었던 풍요로운 들은 이제 긴 휴식에 들어갑니다. 그러면서도 촌사람들은 겨우살이 준비로 바쁜 하루를 보냈습니다. 피붙이 일가붙이 가릴 거 없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논 두둑 길로 추수한 볏가리를 싣고 돌아오는 할배의 경운기가 보입니다. 볏짐 탓에 짐칸에 타지 못한 손자 손녀가 뒤를 따릅니다. 늙은 할아비대신 기운 써야할 아비는 큰 도회로 돈벌러 간지 오랜 세월 흘렀습니다. 깊은 산 높은 곳엔 어느덧 첫눈이 왔다고 합니다. 그날 밤, 쌀쌀한 초겨울 바람이 툇마루 넘어 문풍지를 스쳤습니다. 고샅 쪽을 향해 가만히 귀를 기울이던 아이들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입동입니다. 충청남도 당진에서 찍었습니다.
글·사진|노익상 photree@hanmail.net 다큐멘터리 사진가이자 칼럼니스트로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주로 제 땅과 집을 떠나 살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꾸준한 걸음으로 찾아가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이 결과물들은 국가인권위원회의 <차별> 프로젝트와 동강 사진 축전에 초대 되었으며 연작형태로 여러 매체에 연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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