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스크랩] [서수찬] 이 사

문근영 2010. 10. 12. 09:06

  이 사

 

     서 수 찬(1963~ )

 

 

  전에 살던 사람이 버리고 간

  헌 장판지를 들추어내자

  만 원 한 장이 나왔다

  어떤 엉덩이들이 깔고 앉았을 돈인

지는 모르지만

  아내에겐 잠깐 동안

  위안이 되었다

  조그만 위안으로 생소한

  집 전체가 살 만한 집이 되었다

  우리 가족도 웬만큼 살다가

  다음 가족을 위해

  조그만 위안거리를 남겨 두는 일이

  숟가락 하나라도 빠트리는 것 없이

  잘 싸는 것보다

  중요한 일인 걸 알았다

  아내는

  목련나무에 긁힌

  장롱에서 목련향이 난다고 할 때

처럼

  웃었다

 

 

 

 

 

 

 

장판 아래 숨겨놓은 비상금을 깜박 잊은 채 이사를 간 가계가 있었나 보다. 그들의 망각이

새로 들어온 가계의 심란한 주름살을 활짝 펴주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만 원 한 장의 이

소박한 횡재가 아름다운 것은 다음 가족을 위한 위안거리를 준비하는 부부의 따뜻한 마음

때문일 게다. 시인은 무언가를 다 소유하지 않고 머물 줄 아는 마음을 얻게 된 것이야말로

가장 큰 횡재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목련에 긁힌 상처투성이 가구에서 목련 향이

난다고 하는 아내처럼 우리의 가난과 상처에도 향기가 밸 수 있다면 좋겠다.

<손택수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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