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침
문 태 준(1970~ )
새떼가 우르르 내려앉았다
키가 작은 나무였다
열매를 쪼고 똥을 누기도 했다
새떼가 몇 발짝 떨어진 나무에게
옮겨가자
나무 상자로밖에 여겨지지 않던
나무가
누군가 들고 가는 양동이의 물
처럼
한 번 또 한 번 출렁했다
서 있던 나도 네 모서리가 한 번
출렁했다
출렁출렁하는 한 양동이의 물
아직은 이 좋은 징조를 갖고 있다
새들은 지치는 법이 없다. '내려앉다, 쪼다, 누다, 옮겨가다' 같은 바지런한 동사에
탄성 좋은 스프링이 들어있는 것 같다. 이들 동사가 모여 자신을 한낱 절단된 상자
로밖에 여기지 않는 나무를 출렁이게 한다. 새떼에 꾹 짓눌려 있다. 기지개를 켜듯
튕겨오르는 작은 나무의 출렁임이 나무상자 네 모서리처럼 무뚝뚝하게 멈춰 서 있
던 '나'까지 파문지게 한다. 이 상서로운 파문이야말로 오늘의 일용할 운세다. 그러
니 오늘의 수고로운 짐을 다시 지기로 하자. 그 짐들에 날개를 달아주기로 하자. 한
양동이의 물을 지고 가는 사람처럼, 내가 출렁일 때 흘러넘치는 물이 마른 땅을 적실
수 있다면. <손택수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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