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스크랩] [박상천]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문근영 2010. 10. 21. 09:58

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박 상 천(1955~ )

 

 

나는 왜,

앞에 가는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바꾸고 싶을까

5679는 5678이나 4567로 순서를 맞추

고 싶고

3646은 3636으로, 7442는 7447로 짝을

맞추고 싶을까

5679, 3646, 7442는 나를 불안케 한다.

(중략)

나는 왜,

시계는 1분쯤 빨리 맞추어두고

컴퓨터의 백업 파일은 2개씩 만들어두고

식당에서는 젓가락을 꼭 접시 위에 얹어

두어야 하고

손을 씻을 때면 비눗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헹구어야 할까

시계와 컴퓨터와 젓가락과 비누가 나를

불안케 한다.

그래도 나는,

나를 불안케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잘 살아가고 있다.

 

 

 

 

 

 

 

 

5678에게 5679는 무법자다. 5679입장에선 5678이 고루한 질서의 감옥 속에 갇힌

까다로운 결벽증 환자에 지나지 않겠지만, 다름이 불안을 낳는다. 그 사이의 긴장

이 백업 파일을 2개씩이나 받아야 안심이 되는 신경증을 부른다. 그러나 아직, 희망

적이다. 희망적인 신경증? 그렇다. 과연, 잘 살고 있는가! 불안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손택수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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