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79는 나를 불안케 한다
박 상 천(1955~ )
나는 왜,
앞에 가는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바꾸고 싶을까
5679는 5678이나 4567로 순서를 맞추
고 싶고
3646은 3636으로, 7442는 7447로 짝을
맞추고 싶을까
5679, 3646, 7442는 나를 불안케 한다.
(중략)
나는 왜,
시계는 1분쯤 빨리 맞추어두고
컴퓨터의 백업 파일은 2개씩 만들어두고
식당에서는 젓가락을 꼭 접시 위에 얹어
두어야 하고
손을 씻을 때면 비눗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손을 헹구어야 할까
시계와 컴퓨터와 젓가락과 비누가 나를
불안케 한다.
그래도 나는,
나를 불안케 하는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잘 살아가고 있다.
5678에게 5679는 무법자다. 5679입장에선 5678이 고루한 질서의 감옥 속에 갇힌
까다로운 결벽증 환자에 지나지 않겠지만, 다름이 불안을 낳는다. 그 사이의 긴장
이 백업 파일을 2개씩이나 받아야 안심이 되는 신경증을 부른다. 그러나 아직, 희망
적이다. 희망적인 신경증? 그렇다. 과연, 잘 살고 있는가! 불안은 우리를 깨어 있게
한다. <손택수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꽃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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