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스크랩] [서규정] 백년 종점 / 화왕산 참배

문근영 2010. 10. 25. 11:11

백년 종점

 

서규정

 

 

탱크도 지날 멀쩡한 교량보다, 오래 전에 무너진 다리가

녹슨 철골을 다 드러내놓고 폐허를 자랑하듯

 

끊어져야 아름답다

 

그대에게 가기 위해, 오늘도 나는 폭파된 다리만 찾아 헤맨다

 

 

 

 

 

 

화왕산 참배

 

서규정

 

 

화왕산에 붙은 단풍 불, 낙동강에서 물길 잡아올 틈도 없게

새떼들이 까르르르르 자그르르르 몰려다니다

머리 위로 덮이듯 금방 쏟아져 내릴 것만 같다

 

그물망이다, 그리고 처음이다

주목 받지 못해 언제나 주변부를 얼쩡거리다

지주목처럼 그물 속으로 고갤 쑥 빼들고 둘러본다면

 

아 하늘이란 막이 하나, 막 젖혀진 무한천공 정중앙에서

이름이라도 멋들어지게 갈고 싶을 때

 

쉬잇! 알고 보면 나도 새,

 

태어나 철들기 전부터

제 가슴 속에 둥지를 튼, 철새의 이름을 대체 뭐라고 바꾸지

 

 

―시집『참 잘 익은 무릎』  (신생, 2010)

 

 

▶서규정=1949년 전북 완주 출생.199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등단.

 시집 '황야의 정거장' '하체의 고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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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일신의 면목을 갖추는 일이 철들기라면, 인생의 대본은 자기가 쓰고 자기가 연기하는 거라면, 얼마든지 새로 고쳐 쓰지요. 아하, 그렇다 나도 꽃 피는구나 하고 언제든지 증개축 리모델링이 가능한 의식구조물인데도 그게 잘 안 되더군요. 바다 밖 천근(天根)을 못내 볼지라도 머리 위로 쏟아질 천공(天空)도 그물이니, 이름을 갈고 성을 갈아도 내 안에 있는 새가 내 안에 있지 어디 갑니까? 밤벌레는 꽃 필 때부터 자릴 틀고 들앉는데 밤송이는 그것마저 끌어안고 가시를 세웠네요. 이미 철들어버린 걸 철이 안 들었으면 좋겠다는 건 장고를 거친 바둑판 고수의 신중하고 정확한 진로를 한 점 물리자는 것 아닙니까.

박정애·시인 / 국제신문 [아침의 시]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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