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01년의 억울한 죽음-2 |
| 글쓴이 : 박석무 날짜 : 07-02-16 09:00 |
| 다산처럼 박식한 학자의 한문으로 된 글을 한글로 번역하는 일은 절대로 쉽지 않습니다. 망명생활의 고단한 삶에 변변한 옥편이나 사전도 없이, 더구나 한문 독해력도 턱없이 부족한 사람이 난해한 다산의 글을 번역하는 일은 참으로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목숨이 초개처럼 날려가던 시절에, 정치적 이유와 학문적 차이 때문에 귀한 생명을 어떻게 앗아갔던가를 기록으로 남긴 다산의 「정헌 이가환 묘지명」이나 「녹암 권철신 묘지명」이라는 글을 읽으며 이런 패악한 시대에 이런 내용을 세상에 알리지 않음은 지식인의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를 악물고 얕은 지혜와 부족한 한문 독해력을 총동원해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번역에 번역을 거듭했습니다. 만약 필자가 검거되어 죽은 후의 억울함이 마치 이가환이나 권철신의 억울함으로 간주하면 된다라는 의미에서도 하던 일을 중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노트에다 마구 번역을 해놓았는데, 80년 연말에 검거되어 1년 반 정도의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와 집으로 전달되었던 그 노트를 찾아내 조금 수정 가필해서 간행했던 책이 이른바 ‘창비신서 70’이던 『다산산문선』이었습니다. 「녹암 권철신 묘지명」은 실학의 대학자 성호 이익의 문하에서 28세 때까지 학문을 닦아 성호 실학사상의 계승자로 추앙받던 그 큰 학자가 얼마나 억울하게 죽어갔는가를 생생한 필치로 엮은 권철신의 일대기입니다. 견해가 다르고 사상이 다르다고 선비를 죽이는 그 비참한 역사를 다산의 안목으로 고발했으니 가슴이 저리는 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죽음의 그림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잡히면 죽는다는 불안과 공포를 삭여주던 이가환과 권철신의 일대기는 그런 이유로 필자가 최초로 번역한 글이 되었습니다. 유신시대와 긴급조치 시대에 억울하게 죽어간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고 있는 지금, 명색이 글자나 읽은 지식인들이 억울한 죽음에 눈감고 살아간 이 직무유기를 어떻게 해야 죄를 면할까요. 다산의 위대한 고발정신이 그래서 돋보이기만 합니다. 박석무 드림 |
출처 : 이보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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