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가 된 詩

[스크랩] [이성애]허공 속의 등꽃

문근영 2010. 8. 13. 15:16

허공 속의 등꽃

 

이성희

 

 

아득한 허공에서 비는
좌천동 산동네 흑백사진의 저녁으로 내리네요
내리면서 어두워지는 비는
작은 허공들입니다
이마에 찬 허공이 닿습니다
사글세 낮은 지붕 흐린 골목에
허공이 켜집니다

시멘트 길 틈 사이에 개망초 잎사귀
누나를 기다리다 잠든 아이의 얇은 잠 단칸방 지붕
전신주 옆에 오래 혼자 서 있는 사람의 우산 속에도
허공 하나씩 켜집니다
등나무 줄기를 타고 내리다가
등꽃에 맺힌 허공 하나
우산을 치우고 쳐다보는 내 눈 속으로
툭 떨어집니다
허공 속에 들어와 젖는 세상
등꽃이 핍니다

 

―시집『허공 속의 등꽃』(신생, 2003)

 

 

▶이성희=1959년 부산 출생. 1989년 '문예중앙' 등단. 시집'돌아오지 앉는 것에 관하여' '안개 속의 일박' 등.

놀이가 끝나고 혼자 남은 아이처럼 밤비는 가로등 불빛 속으로 모여들어요. 언덕위의 집은 올라가기도 힘들지만 내려가기도 힘들어요. 저 아래 도시의 불빛이 수생식물처럼 떠오르고 하늘의 별도 가까워요. 허공을 향해 오르는 계단, 발자국소리는 벼랑 끝에서 끝나고 그리운 사람은 별로 뜨지요. 허공을 잡고 오르는 등나무도 서로 등을 기대고 집들도 산을 기대고서야 사글세방을 내주지요. 좁지만 허공이 많은 그마을 사람들은 지나가는 사람 누구에게나 말을 걸어요. 허공이 참 환해요.

- 박정애·시인 / 국지신문 [아침의 시]

 

 

** 며칠 세상을 헤매다 돌아온 아침에 시와 만나는 기분이 새롭습니다.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