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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우리 한국인들은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을 제대로 던질 수 없게 되어 있다.” 한국 남성으로 매우 솔직하게 남자되기를 고백한 전인권선생님(가수 전인권이 아니다)이 <남자의 탄생> 서문에서 한 이야기다. 여자도 예외가 아니다. 근대화과정에서도 개인보다는 전체, 국가와 가족의 일원으로 호출당한 우리에게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 혼동되어 자신다움이란 존재의 근거는 억압당하고 있다. 그러면서 돈벌어 성공해서 가족과 국가를 위해 살면 행복해진다는 경제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살기라는 최면에 빠져 있다. 이런 추세는 한국사회를 즐겁게 살아내기 힘든 억압적인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런 억압은 갈수록 심해서 요즘 청년들은 스펙쌓기 피로와 미래에 대한 불안에 속박당하고 있다.
일하는 시간과 자살률에서 일등인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0년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두 가지분야에서 일등이다. 가장 오래 일한다는 것, 가장 자살률이 높은 국가라는 점에서 그렇다. 특히 자살률은 OECD 평균 두 배라니, 오늘날 한국사람은 매우 불행한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힘겨운 인생이란 생각도 든다. 특히 세계경제포럼이 발표한 ‘2009 글로벌 성 격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중국, 일본보다 한참 뒤져서, 거의 바닥을 치는 115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긴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력남들의 성희롱및 성추태 사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역사는 일등만 기억한다는 경쟁 중독 기업의 광고문구를 원용해보면, 한국은 남성이건 여성이건 평생 살아내기 매우 힘든 가장 불행한 나라로 2천년대 역사에 기억될 판 아닌가. 비통한 일이다.
이렇듯 억압적이고 무거운 출세강박 사회 속에서 자살률까지 증가하는 한국사회 구성원인 우리에게 자신을 해방시키며 즐겁게 살기 프로젝트는 필수 덕목이다. 그것은 '호모 루덴스로 살기’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네덜란드 인문학자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이 최근 다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인류문화의 핵심을 놀이에서 발견한 그는 우리 삶의 행복과 의미 또한 놀이로부터 비롯된다고 주장한다. 유교사상의 근간인 공자님도 “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란 말을 남겼으니, 호모루덴스적 인간되기를 주창한 셈이다.
호모 루덴스는 놀이/예술하는 인간이다. 어린 시절 우리는 놀이에 빠져 살았건만 어른이 되면서 강요된 학습과 성공하기에 매몰돼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것을 잊은 건 아닐까? 그러니 사는 게 재미있을 턱이 없다. 그러나 평균수명 연장으로 정년 후에도 한세대에 해당되는 30여년을 살아가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의 속내와 다시 만나 진정 자신이 좋아하는 행위를 하며 제2의 인생을 열어갈 필요성이 절박하다.
이젠 진정 자신과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것을
다큐멘타리 <록큰롤 인생>을 보노라면 80대 노인들의 호모루덴스로 제2의 인생살기가 마음을 울린다. 온몸이 종합병원인 80대 노인들이 락밴드로 변신하면서 노래하는 인생살이를 사회와 나눈다. 교도소 위문공연도 가고 무대에도 서는 이들은 심지어 병원에서도 노래를 불러 의사를 웃기는 즐거운 존재로 변신한다. 예술의 힘이다. 비루한 삶에 시달리는 60대 여성의 '시 쓰기’가 핵심인 <시>도 호모 루덴스로 사는 제2의 인생을 보여준다. 실직한 중년남성들이 밴드를 결성하는 <즐거운 인생>이나 정년퇴임을 락 컨서트로 장식하는 <브라보 마이 라이프>같은 영화들에서도 왕년에 탐닉했던 음악놀이를 되찾은 즐거운 제2의 인생이 드러난다. 곧 개봉할 다큐영화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에선 베네수엘라의 가난한 비행 청소년이 음악을 통해 거듭나는 인생 구원담을 보여준다.
세상의 도덕, 세속적 가치는 삶을 변화시키는데 역부족이다. 그보다는 자기 속으로 파고 들어가 놀이하는 즐거운 인간으로 살기를 시도해 보는 게 필요하다. 즐거운 삶은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놀이를 일상과 접속시키는데서 시작한다. 예술은 가수, 화가, 작가만 하는 것이 아니며, 돈벌이용만도 아니다. 그저 삶 자체이며, 삶의 방식으로 채택해야하는 호모 루덴스 되기의 필수 덕목이다. <죽은 시인의 사회>의 명대사처럼 인간은 열정에 가득 차 있다. 돈벌이 출세용 인간으론 그 누구도 자기 인생을 구하기 힘들다.
팁: 얼마 전 ‘호모 루덴스로 살기’ 특강에서 곧 정년을 앞둔 경찰서장님이 질문을 하셨다. 한때 기타를 치던 경험을 살려 락 컨서트로 퇴직기념식을 하고픈 생각이 번뜩 든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책이라고 할까봐 고민이 된다, 라고. 당연히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길 것이라고 답했다. 그게 호모 루덴스로 살기에 들어선 서장님의 제2의 인생 잔치일 것이라고 축원과 용기를 드렸다. 그를 주책으로 보는 분이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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