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명사진
양곡
근 십여 년 만에
증명사진 몇 장을 찍었다
이마에 있던 주름살이
눈가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 내가 걸어온 발자국이다
길가 풀잎에 맺히는 이슬같이
삶은 잠시 눈가에 머물다가 이내
귓가에 새치로 한 발짝씩 옮기고 있다
창밖은 벌써 가을이 한창이고
곧 세상은
눈발 펄럭이는 겨울을 맞으리라
근 십여 년 만에 찍은
증명사진 몇 장에서
성큼성큼 다가서는 삶의
겨울을 본다
-시집『길을 가다 휴대폰을 받다』(고요아침, 2009)
▶양곡=1959년 경남 산청 출생. 1984년 '개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어떤 인연'등
가로세로 정해진 틀에 나를 증명한다는 것, 증명하고 싶지 않은 나잇살을 본다는 것, 참 재미없거든요. 저 얼굴은 내가 아니야 하고 절래머리 손사래까지 치고 싶은 나를 내가 증명하는 일, 누군 안 그런 줄 아세요. 다들 그래요.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왜 아니겠어요. 겨울은 아직 까마득해요. 이제 초복인데요 뭐. 너무 속 상해 마세요. 시인은 나이가 없다는데 새치가 좀 난들 어떻습니까. 알고 싶지도 자랑하고 싶지도 않은 노총각 나이, 하늘에 별이 몇 개더라? 별로 세보고 싶지도 궁금하지도 않은 것, 사회학 석사인 시인이 더 잘 알잖아요. 지리산같이 깊고 넓은 그대를 몰라보는 그녀가 참 안타깝네요.
- 박정애·시인 / 국제신문 [아침의시]
**해마다 졸업앨범에 넣을 증명사진을 찍을 때면 해가 갈수록 신경이 더 쓰이더군요.
출처 : 시하늘
글쓴이 : 우가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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