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다
이 희 중
꽃들아 미안하다
붉고 노란 색이 사람의 눈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고마워한 일
나뭇잎들, 풀잎들아 미안하다
푸른 빛이 사람들을 위안하려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놀라워한 일
꿀벌들아 미안하다
애써 모은 꿀들이 사람들의 건강을 위한 거라고
내 마음대로 기특해 한 일
뱀 바퀴 풀쐐기 모기 빈대들아
미안하다
단지 사람을 괴롭히려고 사는 못된 것들이라고
건방지게 미워한 일
(후략)
이 시를 읽다 보면 '미안하다~내 마음대로'의 시어 사이에서 한 인물이 떠오른다.
선한 눈빛의, 마치 6월의 나뭇잎처럼 윤기 나는 얼굴의 한 시인. 늘 작은, 하찮은
것을 굽어보며 그것의 의미를 되새기는 사람. 그리고 그 작은, 하찮은 대상들에게
겸손히 미안함을 중얼거리는 한 사람. 그의 '~들아 미안하다'라는 시구는 '순간객
관화'를 이룬다. 그 '객관화'에 힘입어 시 앞에 앉은 당신은 얼른 '순간성찰'을 얻는
다. 이 점이야말로 아침마다 시 한 편씩을 읽는 묘미이리라. <강은교 . 시인>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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