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영혼

진리는 아름다움과 통한다 - 마하트마 간디

문근영 2010. 4. 12. 13:44

내면의 예술
 일에는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의 양면이 있다. 외적인 면은 내면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모든 진실된 예술은 영혼의 표현이다. 외면의 형상은 내면의 인간 정신을 표현한다는 뜻에서만 그 가치를 갖는다.
 나는 스스로 예술가라고 부르고 남들에게도 인정받는 많은 사람을 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서는 전혀 앞으로 또 위로 나아가려는 충동이나 자극 같은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
 모든 진실된 예술은 영혼으로 하여금 내면의 자아를 구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내 경우만 해도 나는 외부형상을 통하지 않고는 내 내면의 영혼을 표출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나는 보통 사람들이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종류가 다를지 몰라도 나에게도 효과적인 삶의 예술이 있다고 주장한다.
 내 방의 벽에는 무늬가 없어도 좋다. 나는 지붕이 없는 집에 살아도 좋다. 그러면 머리 위로 무한하게 펼쳐지는 하늘과,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살 수 있다. 고개 들어 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을 바라보는 나에게 사람이 만들어 만화경처럼 내 앞에 펼쳐놓는 인위적인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러나 이것은 내가 작품 창작의 의미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일들이 자연이 베풀어주는 영원한 상징들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이냐 하는 것일 뿐이다. 인간이 하는 작품의 창작은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 영혼의 자아실현에 보탬이 될 때만 가치를 지닌다.

진리 우선
 진리는 가장 먼저 추구해야 할 대상이다. 선과 미는 그 다음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예수는 가장 뛰어난 예술가였다. 왜냐하면 그는 진리를 찾았고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런 뜻에서는 가장 뛰어난 아랍 문학이라고 하는 코란을 쓴 모하메드도 마찬가지다. 그들 두 사람은 모두 진리를 가장 우선으로 찾으려 했으며 진리를 추구하면서 표현의 아름다움은 자연스럽게 얻어졌다. 그러나 그들 누구도 예술 작품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내가 찾으려 노력하는 진리이자 아름다움이며, 나는 그것을 위해 살 것이고, 그리고 죽을 것이다.

민중을 위해
 이곳에서 또 나는 민중과의 관계 위에서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민중들에게는 우리가 아름다움 속에서 진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런 교육을 모두 시킬 수가 없다. 그들에게 진리를 먼저 보여 주면 그들도 자연스레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이다. 굶주리고 사는 민중에게 유익한 것이면 나에게는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우선 그들에게 긴요한 것은 생명에 관계되는 것들이다. 그런 문제가 해결되면 그 밖에 필요한 삶의 치장이나 꾸밈은 저절로 따라올 것이다.
 나는 민중들에게 이해되는 예술과 문학을 원한다.
 예술이 예술이기 위해서는 감정을 편안하게 해줘야 한다.
 결국 예술은 생명이 없는 동력에 의해 움직여지는 대량 생산용 기계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의 살아 있는 오묘한 손길에 의해 표현되는 것이다.

내적 순수
 진실된 예술은 외적 형상뿐만 아니라 그 뒤에 있는 다른 어떤 것까지도 잡아서 그려낸다. 생명을 말살하는 예술도, 생명력을 불어넣는 예술도 있다. 진실된 예술은 그 작자의 행복과 만족과 순수의 증거이어야 한다.
 진실한 아름다움은 결국 마음의 순수함에 있다.
 나는 음악과 그 밖의 모든 예술을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보통 그들에게 부여되는 그런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다. 나는 이해를 위해 기술적인 전문지식이 필요한 그런 예술 활동의 가치는 인정하지 않는다.
 삶은 모든 예술보다 위대한다. 나는 삶의 완성을 위해 노력해서 가장 가깝게 완성에 도달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견고한 바탕과 테두리가 마련된 고매한 삶을 제외하고 예술은 무슨 의미를 지니는가?
 우리는 예술이 개인적인 삶의 순수성과는 별개일 수 있다는 믿음에 약간은 익숙해져 있다. 아는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것보다 더 거짓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제 생명이 거의 다해가면서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삶의 순수성이야말로 가장 높고 진실된 예술이라는 것이다. 아름답게 다듬어진 목소리로 좋은 음악을 만들어내는 일은 여러 사람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순수한 삶의 조화를 통해 그런 아름다움을 창출해내는 일은 다만 몇 사람에 의해 가능했을 뿐이다.

진리 속 아름다움
 나는 진리 안에서 그리고 진리를 통해서 아름다움을 본다. 모든 진리는 이념뿐만아니라 진실된 얼굴, 진실된 그림, 노래 등 모두가 매우 아름답다. 사람들은 진실 안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상적인 평범한 사람은 그곳으로부터 멀어져서는 그 속에 있는 아름다움에 눈을 감고 만다. 언제라도 진리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보게 되면 진실된 예술은 나타난다.
 진실된 예술가에게는 영혼 속의 진실이 반짝이는 얼굴을 가진 사람만이 아름답게 보인다. 진실을 떠나서는 아름다움이란 있을 수 없다. 반대로 진리는 겉보기에는 전혀 아름답지 않은 형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기도 한다. 소크라테스는 그가 살던 시대에 가장 진실된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에서 가장 못생긴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는 평생을 진리를 추구하는 데 바쳤으며, 예술가로서는 외적 형상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도 했지만, 파디아스(그리스의 고전에서 조각의 대표자)는 그의 내면에 자리한 진리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데 그의 외모로 인해 아무런 어려움도 겪지 않았다.
 진실과 거짓은 자주 함께 존재한다. 선과 악도 가끔 함께 발견된다. 예술가에게서도 옳은 이해와 그릇된 이해는 자주 함께 발견된다. 옳은 감성이 작용할 때는 진실로 아름다운 창작이 탄생한다. 그런 작품들이 예술 작품 가운데 드물게 발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삶에서도 진실로 아름다운 작품은 드물 수 밖에 없다.
 해가 지는 모습이나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 사이로 솟아오르는 달 등은 나에게 그들 뒤에 있는 그들의 창조자를 생각하게 함으로 진실되다. 창조의 중심에 자리한 진실이 없다면 이런 모든 현상들이 어찌 아름다울 수가 있는가? 내가 석양의 아름다움이나 달의 신비를 찬탄할 때 내 영혼은 창조자의 숭배로 넓게 펼쳐진다. 나는 이 모든 피조물들에서 그를 발견하고 그의 자비를 보려 한다. 그러나 그들이 나로 하여금 창조자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고 부추켜주지 않는다면 석양이나 해가 솟아오르는 것이나 모두 진리에 이르는 길에 방해가 될 뿐이다.
 어느 것이든 영혼의 비상에 방해가 되는 것은 착각이고 얽매임이다. 그것은 마치 이따금 육신이 구제의 길에서 우리를 붙잡아두는 것과 마찬가지다.
 왜 우리는 채소잎에 어리는 빛깔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가? 깨끗하게 치워진 하늘은 아름답다. 우리는 그저 시각의 환영에 불과한 무지개를 보고 싶어한다. 우리는 아름다운 것은 쓸모가 없으며 쓸모 있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고 배웠다. 나는 그러나 쓸모 있는 것이 아름답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