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문득, 노랗다 / 이규리

문근영 2010. 1. 22. 10:19

 문득, 노랗다

 

 

 꽃집 앞에서 문득 그가,
 참 질기게도 있다
 갓 핀 수선 하나 들고 왔다
 그를 들고 온 거지

 

 이건 꽃에 대한 경의인가
 혹은 결의인가
 노란 수선에 마지막 장면이 들어있다

 

 꽃집 앞에서 문득 그가,
 봉우리까지는 꽃집여자가 피웠다
 그러니 꽃이 스스로 피었을 뿐
 구근은 나의 결과가 아니다

 

 둥근 뿌리에 쟁여 놓은 고백들
 발설하는 게 아니었다
 부추긴다고 다 피우지 마라
 두근거림이 먼저라
 혼자서 둥글게 부풀리는 연애도 마라

 

 내년에도 꽃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여자는 말했지만
 내게 와서 꽃은 다 죽었다
 그는 돌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몇 번째 죽음인가
 노란, 
 자살 같은 색깔 옆에서 묻는다
 묻는다 
 꽃집 앞에서 문득 그가,

 

 

이규리 시인

 

1955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났다.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계명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으며,

시집으로 『앤디 워홀의 생각』(세계사, 2004)과 『뒷모습』(랜덤하우스코리아, 2006)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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