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길을 걷다가 / 김경선

문근영 2010. 1. 22. 10:17

길을 걷다가 / 김경선




생을 걸으며
마음의 깊이도 사랑의 결말도
쉬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생의 갈피갈피마다 젖은 풀잎이 무성하고
피고 진 흔적이 난무한 저 길 복판
태양이 진 언덕 위로 서리가 내리고
마른 갈잎도 간직 되어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발아하지 못한 꽃씨를 품고
몸을 내 던지는 꽃잎, 바지가랑이를 붙들고
대지는 겨울 내내 출렁거리는 암내를 풍기는
아, 생이란 것 결국 썩어 발아하는 것


생이라는 슬픈 길을 걸을 때
성에가 낀 창을 후후 불던 꽃잎도,


스스로 꽃 피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염려는
어수룩한 눈물바람인 것인데
생이 기막히다는 것, 생이 막막하다는 것,
다시 꽃피울 틈을 위해
떨고 있는 긴 겨울의 노래에 불과하니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시인정신 2005 여름호 등단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