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신경림의 '소백산의 양떼'

문근영 2010. 1. 22. 10:14

소백산의 양떼 
                  신경림



소백산자락의 목장에서 양떼를 모는 개는
이상하게도 영어만 알아듣는다
뒤로 가 하면 우두커니 섰다가도
고백 하면 재빨리 천여 마리 양떼 뒤로 가 서고
몰아라 하면 딴전을 피우지만 캄온 소리엔 들입다 몬다
미국서 훈련받은 개들이라 날쌔고 영악하기 사람 빰쳐
양치기들은 종일 시시덕거리고 장난질이나 치며
몇 마디 영어로 명령만 내리면 된다

모르고 있었을까 정말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까
영어만 알아듣는 개한테 쫓기는 것이
양떼만이 아니라는 걸
우리들 울부짖음에는 눈만 멀뚱거리다가도
캄온 하는 명령에는 기겁을 해서 양떼를 몰고
스톱 하고 호령하면 목숨을 걸고 세우는 것이
개만이 아니라는 걸
또 개를 영어로 부리며 시시덕거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양치기만이 아니라는 걸
두려워하게 된 것이 양떼만이 아니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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