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누가 살고 있기에 / 하종오

문근영 2010. 1. 21. 08:03

누가 살고 있기에 / 하종오





새가 와서 잠시 무게를 부려보기도 하고
바람이 와서 오래 힘주어 흔들어보기도 한다
나무는 무슨 생각을 붙잡고 있는지 놓치는지
높은 가지 끝 잎사귀들 떨어뜨리지 못하고 있다
잎이 다 시드는 동안 나무는
가슴을 수없이 잃고 찾고 했나보다
그의 둘레가 식었다가 따스해졌다가 반복하는데
내가 왜 이리도 떨릴까
아직 가까이하지 않은 누군가의 체온 같기도 하고
곁으로 빨리 오지 못하는 누군가의 체온 같기도 한
온기가 나를 감싼다
그의 속에는 누가 살고 있기에
외롭고 쓸쓸하고 한없이 높은 가지 끝에
잎사귀들 얼른 떨어뜨리지 못하도록
그의 생각을 끊어놓고 이어놓고 하는 걸까
나무가 숨가쁜 한 가슴을 꼬옥 꼭 품는지,
나도 덩달아 가슴이 달떠지는 것이어서
내 몸속에도 누가 살고 있기는 있는 것이다
가만히 서서 나무를 바라보는데도 나는
무슨 생각을 그리움처럼 놓쳤다가 붙잡았다가 하고
여전히 그는 잎사귀들 떨어뜨리지 않고 있다
새가 부려두고 간 무게를 견뎌야 생각이 맑아지는지
바람이 흔들어대던 힘을 견뎌야 생각이 맑아지는지.





하종오 시인

1954년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이 추천되어 등단.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
1981년 첫시집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 간행 이후, 『사월에서 오월로』(1984) 『넋이야 넋이로다』(1986) 『분단동이 아비들하고 통일동이 아들들하고』(1986) 『꽃들은 우리를 봐서 핀다』(1989) 『정』 『깨끗한 그리움』 『님시편(詩篇)』(1994) 『쥐똥나무 울타리』(1995) 『사물의 운명』(1997) 『님』(1999) 등의 시집이 있다.
1983년 신동엽창작기금 받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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