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 장옥관
그래, 꽃눈이 생겼다는 거지
함부로 몸을 만지지 말라는 거지 초경의 딸아이가 껴안으려는 나를 한사코 밀어낸다
그래, 열 두살이라면
고치를 만들고도 남을 나이
늘 열어놓던 방문도 자주 닫히고
눈에 띠게 말수가 줄어들었다 보지는 않았지만 일기장 두께가 두꺼워지고 있으리라
지난 달에 전화요금이 두 배로 늘었다
늦은 밤 문틈으로 새어나오는
라디오 소리
공명통 같은 고치속에서
콧등에 난 수두같은 네 몫의 시간을 너는 맨발로 건너가고 있으리라
누구도 손 뻗어 거둘 수 없는 어둠이기에
팔짱 낀 시간 견딜 수 밖에 없겠으나
며칠 째 굳게 닫혀 있는 고치속이 하 궁금해
들여다보니 아뿔사,
금성 라디오 앞에 엎드려 졸고 있는 중학생 나를 걱정스레 지켜보던
어머니가 거기 앉아 계신다
시집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 2006년 랜덤하우스
장옥관 시인
1955년 경북 선산 출생. 대구에서 성장
1987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계명대 국문학과.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박사과정 졸업
1991년 시집 「황금 연못」 민음사
1995년 「바퀴소리를 듣는다」 민음사
2003년 「하늘 우물」 세계사
2004년 김달진문학상 수상
2006년 「달과 뱀과 짧은 이야기」랜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