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을 보며 / 이향아
봄이라고 너도나도 꽃피는 게 싫다
만장일치 박수를 치며
여름이라 덩달아서 깔깔대는 게 싫다
봄 여름 가을 꿈쩍도 않다가
수정 같은 하늘 아래 기다렸었다
마지막 숨겨 놨던 한 마디 유언
성처녀의 월경처럼 순결한 저 피
헤프게 웃지 않는 흰 눈 속의 꽃
사람들은 비밀처럼 귀속말을 하며
늦게 피는 꽃이 무서운 꽃이라네
발끝으로 숨을 죽여 지나가면서
늦게 피는 꽃이 그중 독한 꽃이라네
맴돌다가 맴돌다가 돌아오는 사람들이
늦게 피는 꽃이 처음 피는 꽃이라네
이향아 시인
1938 충남 서천 출생. 경희대 대학원 졸업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동 대학원 문학박사. 1966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꽃들은 진저리를 친다』등 16권. 경희문학상, 윤동주문학상, 한국문학상 등 수상. 현재 호남대학교 명예교수, 한국사이버대학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