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의 사막이 들려주는 이야기
“사막에서 길을 잃고 싶은 신비로운 갈망”
▣ 김남희/ 여행가 www.skywaywalker.com
어느 날 어린 낙타가 울면서 달려와 엄마 낙타에게 물었다. “엄마, 내 속눈썹은 왜 이렇게 길어요? 다른 애들이 놀려요.” “얘야, 네 속눈썹은 사막의 모래바람에도 견딜 수 있기 위해 긴 거란다.” 다음날 어린 낙타는 또 달려와 물었다. “엄마, 내 등에는 왜 혹이 있는 거죠?”
“얘야, 그건 네가 메마른 사막에서도 오래 살아남도록 물을 담기 위해서란다.” 어린 낙타는 다음날 또 달려왔다. “엄마, 내 발톱은 왜 이렇게 뭉툭하게 생겼어요?” “얘야, 그건 네가 사막의 모래 구덩이 속에서도 잘 걸을 수 있기 위해서란다.”
사막은 혼자서 가야 한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동화 한 토막이다. 사막에서 살아남기 위한 모든 조건을 갖춘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떠나는 일.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내게는 사막에서 길을 잃고 싶은 강렬하면서도 신비로운 갈망이 있는데, 그것은 거의 중독에 가깝다”고 고백한 사막. 그 사막으로 가기 위해 여행자들은 인도의 서부 라자스탄주를 찾아온다. 낙타의 등에 올라타면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낙타의 방울 소리와 알 수 없는 사막의 언어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몰이꾼들의 나지막한 음성뿐. 내게 등을 빌려준 낙타의 이름은 ‘파탕’. 그의 등에서 흔들리며 바라보는 사막은 건조하고 황량하고 메말랐고, 그래서 아름답다. 뾰족한 가시를 갑옷처럼 촘촘하게 두른 키 작은 나무와 먼지를 흠뻑 뒤집어쓴 마른 풀만이 듬성듬성 자라는 땅. 뜨거운 햇볕이 자글거리며 타오르는 이 마른 땅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은 우리들뿐, 사막은 고요와 적막에 잠겨 있다. 이곳에서 푸쉬카르까지 낙타를 타고 보름을 걸어갔다는 한국인 커플. 이 메마른 땅 위를 걸어가며 그들이 나누었을 사랑과 꿈은 무엇이었을까.
△ 당신은 낙타를 타고 사막을 여행하고 싶지 않은가. 인도 자이살메르 사막 투어에 나서면 이글거리는 낮과 적막에 휩싸인 밤을 경험할 수 있다. (사진/ 김남희) |
낙타 몰이꾼들이 나무 아래 깔아준 자리에 누워 뜨거운 차 한잔을 마시며 점심을 기다릴 때, 이렇게 넉넉한 그늘을 드리우는 사막의 나무 한 그루는 얼마나 새삼스런 위안인가. 차파티와 야채 볶음으로 배를 채우고 책을 읽다가 잠시 잠이 든다. 눈을 뜨면 나뭇가지를 흔들고 지나가는 바람과 새들의 울음소리, 그리고 푸른 하늘과 어느덧 기우는 오후의 햇살, 세상은 저 홀로 완벽한 평화 속에 있다. 이 정적과 고즈넉함만으로도 낙타를 타고 떠나는 짧은 여행은 이미 충분한 행복이다.
인도의 사막, 그레이트 타르 사막의 모래언덕은 작고 볼품없다. 그러니 이곳에는 모래언덕을 보기 위해 오는 게 아니다. 그저 메마른 사막 위로 해가 지고, 별이 뜨고, 다시 해가 뜨는 모습을 바라보며 인디언들이 그랬듯 침묵 속에 신의 음성을 듣고 자연 속으로 잠시나마 귀의하는 것. 이것이 사막에 오는 진짜 이유다. 모래언덕 위로 어둠이 내려앉는 소리와 별들이 눈뜨는 소리를 듣고 밥 뜸 드는 냄새에 코를 벌름거리면 한 줄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온다. 보글보글 밥물 끓어오르는 소리. 내 뱃속에서 꼬르륵거리는 소리. 배고픈 낙타들이 건초 씹는 소리. 모닥불 속에서 탁탁 불똥 튀는 소리. 몰이꾼들이 동네 소문 주고받는 소리. 붉은 달, 별빛을 잠재우며 몰래 떠오르는 소리. 개똥벌레들이 모래 위에서 사랑 나누는 소리. 온몸의 감각이 생생하게 깨어나며 몸과 마음이 고루 예민해지는 사막의 밤. 모래 위에 침낭을 깔고 잠들었다가 눈을 뜨면 땅과 하늘의 경계를 지우고 천지를 보랏빛으로 물들이며 찾아오던 붉은 해와 신선한 새벽 공기. 사막이 여행자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별과 바람과 가없는 하늘과 땅, 그리고 침묵의 미더움. 그러니 사막에는 혼자서 가야 한다. 사막의 언어를 듣기 위해서는 침묵해야 하니까.
데카르트의 사막은 암스테르담
가무를 즐기는 우리 민족의 전통은 참으로 면면하고도 꿋꿋한 것이어서 이 사막에서도 밤새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술을 마신다고 한다. 사막에서는 집단주의와 공동체 정신을 버리자. 음주가무에 대한 열렬한 애정도 접자. 혼자 무릎을 베고 앉아 메마른 사막이 품고 있는 것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것. 이것이 사막에서 여행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사막에서는 조금 외로워도 괜찮은 법이다. 외로움은 모래언덕 깊이 묻어두고 올 수 있으니까.
△ 그곳에 남긴 발자국은 이내 지워지더라도 그대의 마음에 깃든 모래 한 알은 끝내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사진/ 김남희) |
명상을 해야만 했던 데카르트는 자기 나름의 사막을 택했다고 한다. 당시 상업이 가장 번성하던 도시 암스테르담이었다. 데카르트는 그곳에서 발자크에게 편지를 보낸다. “나는 날마다 한 대단한 국민의 붐비는 무리 속으로 그대가 그대의 오솔길에서 가질 수 있을 만큼이나 자유롭고 느긋한 마음으로 산책하러 나갑니다.”(카뮈의 <결혼, 여름>에서 인용) 데카르트가 되지 못하는 범부들이여, 잠시라도 도시를 떠나 모래바람 부는 사막을 찾아나서자. 사막의 길 없는 길들은 그대의 발자국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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