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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풍경[서울일보]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이성복

문근영 2009. 5. 11. 11:46

             詩가 있는 풍경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

                                                      이성복

 

 

나방이 한 마리 벽에 붙어 힘을 못 쓰네 방바닥으로 머리를 향하고 수직으로 붙어
숨 떨어지기를 기다리네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갔다 온 사이 벽에 나방이가 없네
그 몸뚱이 데불고 멀리 가지는 못했을 텐데 벽에도 방바닥에도 나방이는 없네 아직
죽음은 수직으로 오지 않았네 잘 살펴보면 벽과 책꽂이 사이 어두운 구석에서
제 몸집만큼 작고 노란 가루가 묻은 죽음이 오기를 기다리네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은 슬프지 않아라, 슬프지 않아라.

 

 

                                                                             

 

 

◆ 시 읽기 ◆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의 세상인데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도 숱하게 죽고 태어나는 미물들의 죽음이 무어 대수이랴. 보지 못하는 곳에서 모르는 누군가가 죽어간다 한들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죽어가는 그 누군가의 죽음이 슬픔이나 절박함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더욱이 사람에게 불편을 끼치는 미물을 손으로 쳐 죽이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닌 세상에 나방 한 마리가 벽과 책꽂이 사이 어두운 구석에서 죽어간다 한들 무얼 슬프기까지 하겠는가. 제 몸만큼 작고 노란 가루가 묻은 한 마리 나방의 죽어가는 모습에서 시인이 본 것은 존재의 유한성이리라.
모든 생명의 태어남은 죽음을 전제한다. 모든 생명체는 유한의 시간을 살고 죽는다. 태어남으로 비롯된 삶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태어남에서부터 반드시 죽어간다는 공통점에서 사람의 목숨과 나방이의 목숨이 결코 다르지 않다.
태어남의 존재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죽음으로 소멸 되어가 것은 슬픈 일이다. 치열한 삶을 마감하고 있는 한 마리 나방에게서 시인은 유한 생명의 허무한 존재소멸을 본 것이다. ‘슬프지 않아라. 슬프지 않아라’ 역설로 강조하며 시인은 지금 슬픔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유 진 / 시인, 첼리스트 (선린대학 출강)

 

서울일보
[2008-11-25 2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