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다시 실성해버려 땅으로 내리던 눈 하늘로 치솟는다 엊그제 살얼음 덮였던 강
오늘은 더 얼었을까 얼마만큼 더 두터워졌을까
깊이 모를 저 강의 가슴앓이를 낸들 알 수 있으랴
눈 … 눈 닿는 어디까지나 눈이 흩날려 세상은 자취도 없다 길도 길 아닌 것도 없는 천지간에 인도교도 가교도 없는 막막함 속 이 반자 받은 눈발을 뚫고서 누추한 마음으로 매나니로 강 저쪽 가물가물한 기슭까지 오늘 안으로 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질기만 한 시간
저녁 끼니때는 왜 이렇게 빨리 오며 밤은 또 왜 이렇게 빨리 오는 것인가 강은 그저 팔 벌려 온종일 받아들이고만 있다 쌓이는 눈을 눈물을, 사랑과 미움의 온갖 때를 강 저쪽 기슭에는 살 비비며 만든 식솔들 사랑과 미움으로 만나는 식솔들이 있기에 가야 하는 것이다 날 새기 전에
참 많은 죽음을 저 강은 지켜보았으리 다 받아 들였으리 눈발에 아랑곳하지 않고 저 홀로 깊어지는 강 침묵으로 허락했던 시간이 쌓여 기나긴 저 강 이루었을 터이니 모든 삶은 모든 죽음보다 어렵다 아니, 어렵지 않다.
※ 반자 받은 : 몹시 노하여 펄펄 뛰다 ※ 매나니로 : 맨손으로, 맨밥으로
◆ 시 읽기 ◆
살얼음이 덮인 강위로 눈발이 하늘로 치솟는 저녁, 시인이 보고 있는 강은 희뿌연 세상의 강이며, 고단한 삶의 강이며, 저마다의 가슴에 흐르는 강이었으리라. 자신도 알 수 없는 그 깊이 모를 강의 가슴앓이를 누군들 알 수 있을까? 반자 받은 눈발 흩날려 세상이 자취도 없이 사라져버리 듯, 강 저쪽 기슭에서 가물거리는 행복을 위해 힘들고 고단한 시간들을 참고 견디며 가야하는 것이다. 눈발 펄펄 날리는 세상의 저녁 강을 건너야 하는 것이다. 펄펄 끓는 삶의 애환 가운데도 저마다의 가슴에는 여전히 강이 흐르고 지금껏 지켜본 참 많은 죽음, 삶의 애환을 묵묵히 다 받아들이면서 인생은 저 홀로 깊어지는 것이다. 침묵으로 허락했던 시간들이 기나긴 강을 이루고, 깊어지기까지 세상 모든 눈물을, 사랑과 미움의 온갖 때를 받아들여야 한다. 살 비비며 만든 식솔들, 사랑과 미움으로 함께하는 식솔들이 있기에 삶의 고달픔도 기어이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제껏 살아온 날만큼 일구어 놓은 내 집과 사랑하는 내 식솔들이 있기에 삶의 보람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삶은 모든 죽음보다 어렵기도하고 또한 어렵지 않기도 한 것이리라.
유 진 /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