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향수 (鄕愁)/정지용

문근영 2009. 4. 23. 10:12



향수 (鄕愁)/정지용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돌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립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찿으려
풀섶 이슬에 함초롬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