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녹색비단구렁이/ 강영은

문근영 2009. 4. 16. 00:50

녹색비단 구렁이/강영은

어머니. 천둥번개 치고 비 오는 날이면 비 냄새에 칭칭 감겨 있는 생각을 벗어버리
고 몸 밖으로 범람하는 강물이 되고 싶어요 모과나무 가지에 매달린 모과열매처럼
시퍼렇게 독 오른 모가지를 공중에 매달고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신부가 되어 한
번의 낙뢰, 한 번의 키스로 죽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내 몸의 죽은 강물을 퍼 나르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가 건너야 할 몸 밖의 세상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뿐이에요 눈부
시게 빛나는 햇빛의 징검다리 뿐이에요 내 몸에 똬리 튼 슬픔을 불러내지 못하기 때
문일까요? 연두에서 암록까지 간극을 알수 없는 초록에 눈이 부셔요 밤이면 독니에
찔려 죽는 꿈들만 벌떡벌떡 일어나요

어머니, 녹색비단구렁이새끼를 부화하는 세상이란  정말이지 음모일 뿐이에요 희망
에 희망을 덧칠하는 초록의 음모에서 나를 구해주세요 제발 내 몸의 비단 옷을 벗겨
주세요 꼬리에서 머리까지 훌러덩 벗어던지고 도도히 흐르는 검은 강,깊이 모를 슬
픔으로 꿈틀대는 한 줄기 물길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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