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소곡 / 신석정

문근영 2008. 11. 2. 08:27

 

소     곡

                          신 석 정

 

   오고 가고

   가고 오는

   세월의 체중도 무거운 분수령에서

   물가듯

   꽃 지듯

   떠나야 할 우리도 아니기에

   서럽지 않은 날을 기다리면서

   다시

   삼백 예순 날을 살아가리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서로의 수평선 /조승호


어제를 짐짓 서로에게 묻어두고

뜨거운 시작을 위하여 활활 불로 지피려 한다.

비로소 제대로 뜨거워질 때

훨씬 좋을 것을 생각한다.

마주 꿈에 젖은 섬이 될 것이다.

파도를 모두 데리고 어쨌거나 아낌없이 닿자.

서로에게 한 잎 한 잎 활활 닿아서

파도에게 엎드려 사무침으로 울 것이다.

하염없이 파도처럼 엎드리는 사랑

활활 물들어서 요량이 안 되는 그리움 데리고

가슴 한복판을 수평선 그으려 한다.

사랑만큼 바다를 죄다 불지를 때라고.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바다의 타인(他人) / 조승호




바다는 상처를 자꾸 덧내며 목이 꽉 메었다

얼씬얼씬 흐느끼는 바람에 대고

소금처럼 터지는 입술 가슴 파랗게 하고

온통 허물어대며 팡팡 주먹질했다

등 굽은 소나무 몇 그루도 타인처럼

바다를 몹시 버티고 서서

어깨마다 소금이 맺혀 햇살을 꽂고

이왕지사 온몸으로 욱신욱신 아파보였다

심상치 않았을 것처럼 쩍쩍 갈라진

등껍질 속으로 또 바다가 환히 보였다

상처를 덧내며 울어대는 바다의 타인 몇이 있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감자꽃이 피었다/ 조승호



텃밭머리 여름 둘레 둘레로 감자꽃이 피었다

돌담길 따라 기댄 그리움이 안개처럼 젖어서

가슴 뜨겁게 일일이 하얀 감자꽃이 피었다

보르르한 이야기 햇살에 토실토실한 그늘을

치렁치렁하게 우리 둘처럼 감자꽃이 피었다

허기진 한나절이 천천히 그리움을 풀어내리고

내 가슴 오랜 들녘으로 풀바람 줄줄이 불었다

출렁이는 너에게로 쏠려서 감자꽃이 피었다

허리를 구부리고 꿈일세라 감자꽃이 피었다

숱한 옛날을 하얗게 두르고 친정어머니처럼

가난한 산허리를 거머쥐고 감자꽃이 피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아내의 샹송      

                       문병란

 

계절이 먼저 오는 변두리

40평짜리 작은 단독주택

 

부엌에서 들려오는

아내의 도마질 소리

 

딸각 딸각 딸각

이 저녁도 인생은

4분의 3박자로 흐른다.

 

기쁜 일 슬픈 일

가다가 엇박자도 섞으며

아내는 지금

쇠고기 반근을 다지고 있을까

 

인생은 30촉 백열등

그 불빛처럼 쓸쓸해도

도마질 소리는

궁, 상, 각, 치, 우로 흐른다.

 

사랑하는 사람아, 해넘이

고운 노을 등에 지고

그대 어디쯤 흔들리고 있는가

 

가난한 아내의 식칼 끝에 묻어나는

소슬한 음악, 한 접시 노을이

식탁 위에 곱게 타고 있다.

'좋은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의 마침표를 위하여 / 조승호  (0) 2008.11.02
삼락동의 비가 / 박인과  (0) 2008.11.02
빈집에 가자고  (0) 2008.11.02
동강에서 / 조승호  (0) 2008.11.02
흰곰 / 김영식  (0) 2008.1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