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신춘문예 詩 당선작

2020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박성민

문근영 2020. 1. 2. 08:28

시 박성민]'문자와의 사랑

 

 

심심하면 자전거를 타고 소양강 돌다리까지 달렸다

강변에 먼저 와 있던 문자는 조용히 앉아

막 피어난 안개로 손을 씻고 있었다

나는 물풀처럼 흔들리며

흐르는 물살이 입은 햇살이 부러웠다

강 건너 우두동의 저녁을 향해

문자는 어른처럼 익숙한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그녀가 알아듣지 못하게 잠긴 목소리로

처음 `그대'라고 불러 보았다


저녁 강이 비치는 하늘은 깊은 분지를 향해 흘러갔다

나는 역 광장에서 서성이며 미군부대 헬기가 뜨기를 기다렸다

담 밖 꽃 진 나무들이 어떻게 바람소리를 내는지 궁금했지만

서울로 가는 길이어서인지, 기적소리 길게 레일을 벗어날 때

검은 안개 본 적 있니? 미군부대 녹슨 철조망에 기대어

헝클어진 머리 문자는 짓궂게 웃기만 했다          

 

 80여편이 예선을 거쳐 올라왔다. 대체적으로 해석되고 존재하는 세계를 전달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특이할 만한 것은 응모자 연령대가 상당히 낮아졌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것이다' 할 만큼 눈에 띄는 작품은 없었다.

박여원의 `등대와 함께한 밤', 김겸의 `귀로', 권소영의 `물기', 박성민의 `문자와의 사랑'을 중점적으로 논의했다. `등대와 함께한 밤'은 산문시로 시상 전개의 역량이 돋보였으나 시적 장치가 단조로웠다. `귀로'는 전개 방식은 특이했으나 특정 언어 체험의 일반화에 무리가 있었다. 최종적으로 `물기'와 `문자와의 사랑'이 당선을 겨뤘다. `물기'는 시적 전개와 상상력의 완성도가 높았으나 볼륨이 약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최종으로 오늘날 생활양식을 잘 반영한 `문자와의 사랑'을 당선작으로 뽑는 데 의견을 모았다. 모든 분의 정진을 빈다.

이영춘·이상국 시인          


 

추수가 끝난 논 위로 덤불이 삶처럼 얽혀 굴러간다. 아카시아나무 질긴 뿌리 끝에 바람의 생장점을 가지고 있는 곳. 남대천 옆 소금창고에는 나이 든 제설공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덜그럭거리는 창을 고치며 몇 번째 안간힘인가 셈해본다. 해풍은 좀처럼 잦아들지 않고 인제 쯤에서 눈이 내리기 시작할 것이다. 창밖 빈 가지들이 어떻게 겨울을 버티는지 바라보며 나는 시를 쓴다.

당선 소식을 듣고 어린 내가 봤던, 오랫동안 의심했던 녹슨 이정표가 맞았음을 알게 됐다. 해는 지고 갈 길은 멀지만 멈추지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오규원, 김혜순 교수님, 가족들, 친구 연호와 주현, 그리고 같이 겨울을 보내는 동료들이 떠오른다. 말 없는 내게 말 걸어 준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