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남(언론인)
G20 정상회의가 2010년 한국에서 개최되는 것과 관련하여 최근 정부중심으로 국격(國格)논의가 새삼스럽게 일고 있다. 한국이 개최국으로서 그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된 것이야 말로 국제적으로 신장된 국가적 역량을 인정받은 것이니 만치, 그에 걸맞게 국격을 높여나가자는 것이다. 대통령과 그 주변 경제관료들이 G20에 크게 고무되어있는 느낌이다. 이제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서 국격을 논의하게 되었다는 것은 일단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에 열렸던 국가브랜드위원회에서는 국격을 높이기 위해 정부 각 부처가 마련한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외교통상부는 경제협력개발기구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공적개발원조(ODA) 규모를 2009년의 10억 달러에서 2015년 30억 달러로 늘리고, 2013년까지 해외봉사단 2만 명을 파견한다고 한다. 기획재정부는 IMF와 세계은행 등에 우리나라의 출자지분을 확대하고, 이들 기구에 근무하는 한국인 직원의 수를 늘리며, 세계 각국과의 인재교류를 위한 ‘글로벌 코리안 스칼라쉽’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2010년 한해 동안에만 3천 5백 명(5백 2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전시와 홍보로 나라의 품격을 높일 수 있나?
국가브랜드위원회(사실 나는 이런 위원회가 꼭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는 2010년 2월에 개최되는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5~10월의 상하이 엑스포, 6~7월의 남아공 월드컵 대회 등의 행사에 맞추어 CNN, BBC 등 해외매체에 국가브랜드 광고를 내보내는 한편, ‘유튜브’와 공동으로 UCC 공모전을 개최, 세계 속에 한국을 알릴만한 온라인 콘텐츠를 개발키로 했다고 한다.
국내 차원에서는 행정안전부가 전국의 간판 5백 55만 여개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작업을 벌여 불법광고단속을 강화하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G20 글로벌 시민되기 10대 실천과제’를 발굴하여 관련 공익광고 제작을 늘린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지난 12월에 있었던 광화문 광장의 ‘스노 잼’ 행사계획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행안부의 간판정비계획은 서민경제가 어려운 만큼 더 시간을 두고 검토해 보라고 지시한 반면, 논란이 많았던 서울시의 ‘스노 잼’ 행사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격려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가 보기로 각 정부부처가 마련했다는 일련의 방안들은 국격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는 어쩐지 지나치게 형식적이고 어설프기 짝이 없다. 제시된 방안들이란 거의 모두가 단기적인 ‘전시와 홍보’에 집중하고 있다. 일회성의 산발적인 전시와 홍보로 어떻게 막중한 국격을 높일 수가 있단 말인가. 전시효과 위주의 정책과 돈주고 광고내는 홍보는 저 옛날 개발경제시대에 자주 보던 행태에 다름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G20회의를 준비하는 면면들을 볼 때, 우리 사회가 다시 개발경제시대로 돌아가고 있지 않느냐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국가브랜드 운운하는데서 보듯이 정부는 국격과 브랜드, 국가와 회사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국가와 회사는 엄연히 다르고, 또 달라야 마땅하다. 국가운영과 회사운영은 천양의 차이가 있다. 회사는 최종적으로 사적인 이익을 도모하지만, 국가는 공동선의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브랜드라는 말은 마케팅 용어로서, 상품 또는 특정회사의 품질, 연혁, 신용에 소비자의 신뢰도와 호감도 등이 교직되어 형성된 구매력 내지 이미지를 말하는 것이다. 브랜드는 회사건 국가건 한시성을 띨 수 밖에 없다.
나라의 품격을 높이려면
이에 반해서 국가의 품격(국격)은 상품이나 회사의 브랜드와는 달리 한 나라의 역사와 전통, 과학과 기술, 문화와 예술, 교육과 도덕, 국력과 대외관계 등 보다 광범하고 복합적인 요소들에 의해 형성되고 결정된다. 따라서 국격은 단기간내에 높아지거나 만들어질 수가 없다. 전시와 홍보로 급조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구한 세월을 통해서 형성되고 축적된 국가의 진면목과 이미지로서의 국격은 쉽게 무너지거나 훼손되지 않는 특성을 갖는다.
또한 국격은 경제력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경제력만을 맹신한다면, ‘경제적 동물’로 국격이 오히려 격하될 수가 있다. 인도를 잃을지언정 세익스피어는 내놓을 수 없다는 역사와 정신문화가 영국의 국격을, 문화와 예술로 축적된 자존심이 프랑스의 국격을 보여주듯이 정신과 문화가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 국격이다. 국격에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환경은 물론 국민통합의 정도, 부정과 부패, 관용과 인권상황,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 등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 점에서 백범 김구 선생이 일찍이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富)하고 강(强)한 나라보다는 인의(仁義)로 세계의 모범이 되는 문화 도덕국가가 자신이 원하는 나라라는 가르침은 깊이 경청할 필요가 있다. 군청공무원의 16%가 부정부패에 연루되고, 용산참사를 1년씩이나 방치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라면 정부가 감히 국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황당하고 가당찮다.
지도층의 품격 또한 국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산안 하나, 묵은 노사문제 하나를 제때에 처리하지 못하는 대한민국 국회를 두고는 이 나라 정치권은 국격을 말할 자격이 없다. G20 정상회의를 유치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대통령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만세삼창을 불렀다는 보도를 보고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것은 G20 한국개최가 대단한 일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보여준 그 천박하고 가벼운 처신때문이었다. 누구는 G2라는 표현조차 사양하는데, G20에 흥분하여 표정조차 관리하지 못하는 그 언행이 부끄러웠던 것이다. 국격을 높이기 보다 떨어뜨리지나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국격을 말하는 자 먼저 내 처신이 국격에 어떻게 영향할 것인지 스스로 신독(愼獨)할 일이다. ▶ 글쓴이의 다른 글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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