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비룡소 동시 문학상 당선작- 문근영의 『두루마리 화장지』
심사 경위
제2회 비룡소 동시 문학상 심사 결과를 발표합니다. 지난 6월 30일 원고를 최종 마감한 비룡소 동시 문학상에는 총 172명의 응모작이 접수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시인 최승호, 시인 함기석, 시인 유강희 님을 위촉하였습니다. 먼저 응모작을 각각 위원들에게 보내어 심사한 결과 총 4명의 응모작을 본심작으로 천거, 8월 23일 본사에서 본심을 진행하였습니다. 논의 끝에 문근영의 『두루마리 화장지』를 당선작으로 선정하였습니다. 응모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본심작
『울음은 이름이 된다』
『방구는 두고 왔다』
『나비+잠=나비잠』
『두루마리 화장지』
심사평
제2회 비룡소 동시 문학상에는 다양한 문양과 색깔의 작품들이 응모되었다. 꽃, 풀, 개미, 나비 등 전통적인 소재들이 많았고, 할머니 할아버지 이야기도 자주 등장했다. 그러나 익숙한 소재나 인물을 등장시킬 때 그것을 새롭게 상상하고 전개하는 독창성이 중요한데, 전반적으로 이 점이 부족했다. 코로나19를 겪는 요즘 아이들의 일상을 다룬 동시들은 시인이 상황을 설명하거나 정보 전달에 그치면서 코로나19가 단순한 소재 차원을 벗어나지 못했다. 출산과 육아일기, 성장일기, 병상일기 등 아이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기록한 동시들은 애틋한 사랑과 고통의 나눔을 통해 가족애를 느낄 수 있었으나, 사적 차원의 기록이 공적 감동으로 확장되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순우리말을 내세운 동시들은 순우리말의 보존과 사용 보급이라는 취지는 좋으나 울림이 적어, 예술품이 아닌 교육 목적용 작품집으로 읽혔다. 말놀이 계열의 동시들도 눈에 띄었으나 기존의 말놀이 동시들과 차별성이 적고, 기성 시인들의 연상과 전개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도상을 삽입하여 형식적 새로움을 시도한 동시 역시 시각적 형식과 그 형식을 통해 담아내고자 하는 내용이 긴밀하게 연계되지 못했다. 낯선 형식에 부합하는 통찰과 유머가 가미되어야 할 것이다.
우려되는 점도 있었다. 일부 창작자들이 현실의 아이들과는 유리된 채 동시집, 그림책, 동화책 등을 토대로 창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발한 착상과 비유에 매혹되어 기성 시인의 상상력에 자기도 모르게 종속되는 경우인데, 그 잔재와 흔적은 곳곳에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무모하더라도 지금까지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던 영역, 어린이 세계에서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놓쳤던 부분을 찾아서 자기만의 시각과 발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척도를 적용하여 최종 본심작 선정에 임하였다. 첫째, 발상의 참신함. 둘째, 표현의 자연스러움. 셋째, 시적 응축과 절제미. 넷째, 리듬의 창조. 다섯째, 유머와 재미. 여섯째, 시적 감동과 울림. 일곱째, 천진하고 엉뚱한 동심의 구현 등이다. 비교적 이에 부합하는 네 분의 응모작을 본심작으로 선정하여 각각의 작품에 대해 차례차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울음은 이름이 된다』는 아이들이 좋아할 소리와 언어를 주목해서 유머러스하게 처리한 점이 좋았다. 고양이, 강아지, 돼지, 기러기 등 시인이 주목한 소리들은 자주 다루어졌던 것인데 새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치지 못한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마이크와 스피커를 두 바보로 재밌게 처리한 점은 흥미로웠으나 말놀이 성격의 다른 동시들이 특유의 웃음과 재미를 주지 못했다. 소리를 매개로 새로운 세계로 뻗어나가는 사유 또한 부족했다.
『방구는 두고 왔다』는 아이다운 눈길과 마음이 잘 녹아든 시편들이었다. 문방구 아저씨가 나를 도둑으로 생각하며 흘겨보아서 문방구에 픽 방구를 남겨 두고 나오는 아이, 엄마 몰래 엄마 사인을 연습하는 아이 등 미묘한 심리를 지닌 아이들의 행동이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익숙한 공간에서 익숙한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설명적 문장들이 긴장감을 떨어트렸다. 백수 삼촌, 유일하게 엄마를 웃게 하는 택배 아저씨 등 낯익은 캐릭터들도 서사의 참신성을 떨어트렸다. 관습적인 동시 쓰기에서 벗어나려는 과감한 시도가 필요해 보였다.
『나비+잠=나비잠』은 새로운 형식 때문에 가장 오래 논의되었다. 응모작 전체가 낱말 쪼개기 및 결합 놀이였다. 나비잠, 오리너구리, 돌나물, 눈깔사탕 등 합성어를 분할하여 ‘언어-사물-서사’ 순으로 풀어내는 상상력이 재밌었다. 새끼발가락에서 태어나서 어른이 되었는데도 여전히 새끼인 새끼발톱처럼, 여러 소재들이 유아와 저학년 아이들 정서에 밀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전체 편수를 채우기 위해 합성어를 찾아내 억지스럽게 전개한 흔적이 보였고 작품 간의 편차가 큰 게 흠이었다. 또한 이러한 기획 동시 외에 다른 동시들도 잘 써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낱말의 분절 및 결합 방식이 말 배우기 학습 도서에서 시도된 바 있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오랜 논의 끝에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다.
『두루마리 화장지』는 시인의 직관력이 날카롭고 적확하며 섬세한 관찰을 통해 독창적 해석을 이끌어 낸 점이 주목되었다. 둘둘 풀리는 두루마리 화장지를 처음엔 천천히 달리다 막판에 전력 질주하는 마라토너로 착상한 점, 아무도 살지 않는 줄 알았던 따개비 마을에 물이 들자 집집마다 촉수를 내미는 장면을 통해 생기와 활력을 살려 낸 점 등 섬세한 동심의 눈길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엉뚱하고 참신한 발상이 발상 자체에 매몰되지 않고 어린이에게 재미와 웃음을 주고, 사색과 사고의 전환을 유도하는 점이 돋보였다. 거듭 말하지만 이 시인의 작품에는 생략의 문법으로 최소화된 언어들이 여백의 공간에서 빚어내는 말의 울림과 메아리가 있다. 이것이 바로 시인들이 중요시하는 ‘침묵의 조각술’이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비롯한 여러 작품들이 보석과도 같은 단단함과 언어 결정체로서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불필요한 말의 군더더기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이번의 수상작이 어린이들에게 사유의 스펙트럼을 넓혀 주는 프리즘 같은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수상작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의 이견은 없었다. 수상자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드린다.
심사위원 (최승호, 함기석, 유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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