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문근영
땔감도 되고 팽이도 되고 빨랫방망이도 되고 대들보도 되고 배도 되고
썩은 후엔 거름이 되는 나무
그런 나무도 흑심을 품는 구나
연필이 되기 위해서
----------------------------------------------- 동시 감상/이사람
동시의 산문화 경향은 동시의 형식적 다양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형식의 다양성 보다 ‘아이들을 위한‘시라는 근본적인 목적성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가끔 동화의 시놉시스를 동시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은 동시를 마주하기도 한다. 참 무책임한 문자의 나열이다. 글의 주된 목적성은 메시지의 전달 수단이라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는 것은 주객의 전도일 것이다.
문근영 시인의 「나무」는 2017년 부산일보 동시 당선작이다. 이 동시는 이미지가 명징하다. 1연과 2연에서는 나무의 생태적 한계를 나열한다. 3연과 4연에서 그 한계를 극복해 낸다. 그런 나무도/흑심을 품는 구나에서 ‘흑심’이라는 시어가 앞부분에서 끌고 온 나무의 일반적 관념을 순간 뒤집어버린다. 나무가 연필이 되기 위해서는 ‘흑심’이 필요하고, ‘흑심’은 결국 연필이라는 꿈을 완성시키기 위한 나무의 궁극인 것이다. 사람들도 연필처럼 저마다의 ‘흑심’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흑심은 마음 한가운데에 꼭꼭 숨겨 두어 깎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연필의 흑심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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