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나무/문근영

문근영 2020. 4. 5. 07:36

나무/문근영

 

 

 

땔감도 되고

팽이도 되고

빨랫방망이도 되고

대들보도 되고

배도 되고

 

썩은 후엔

거름이 되는 나무

 

그런 나무도

흑심을 품는 구나

 

연필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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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감상/이사람

 

동시의 산문화 경향은 동시의 형식적 다양성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그리 바람직해 보이진 않는다. 형식의 다양성 보다 아이들을 위한시라는 근본적인 목적성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가끔 동화의 시놉시스를 동시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스운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분명하지 않은 동시를 마주하기도 한다. 참 무책임한 문자의 나열이다. 글의 주된 목적성은 메시지의 전달 수단이라는 것이다. 수단이 목적을 넘어서는 것은 주객의 전도일 것이다.

 

문근영 시인의 나무2017년 부산일보 동시 당선작이다. 이 동시는 이미지가 명징하다. 1연과 2연에서는 나무의 생태적 한계를 나열한다. 3연과 4연에서 그 한계를 극복해 낸다. 그런 나무도/흑심을 품는 구나에서 흑심이라는 시어가 앞부분에서 끌고 온 나무의 일반적 관념을 순간 뒤집어버린다. 나무가 연필이 되기 위해서는 흑심이 필요하고, ‘흑심은 결국 연필이라는 꿈을 완성시키기 위한 나무의 궁극인 것이다.

사람들도 연필처럼 저마다의 흑심을 하나씩 가지고 있을 것이다그 흑심은 마음 한가운데에 꼭꼭 숨겨 두어 깎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다. 연필의 흑심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