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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2016 농어촌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김이솝 외

문근영 2019. 2. 11. 10:08

[2016 농어촌문학상 시부문 당선작] 김이솝 외

 

최우수상
소금이 온다 / 김이솝

 

 

고무래를 밀고 있는 등 뒤
혼자 잠든 아이의 뺨 위로 한 두릅의 햇귀가 걸린다


귀가 어두운 해변이 고양이 눈에 불을 켜고 들어와
낮별의 꼬리를 잡아당길 때, 팽팽해지는 하늘
빛들이 허리를 펴고 들어와 아이를 일으켜 세운다


썰물 위 태양을 굴리며 놀던 아이가
파도 속으로 까르륵 웃으며 달려가다가 흰 거품을 데리고 돌아올 때
말랑말랑해지는 물결

수차가 돌아간다 간수가 밀려온다 대패질*을 멈추지 마라
소금이 온다, 소금을 몰아라!


등에 매달리는 땀 꽃
소금 꽃 파랑에 손을 묻는 아이


두껍아 두껍아 헌집 줄게 새집 다오


손등 위로 죽은 아비의 눈썹 같은 흰 달이 지나간다
가깝거나 먼 해거름 위 지평선들
만종을 울리며 오는 다구질* 소리


아이의 잠 속 어룽대는 저녁 불빛을 받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물의 이엉 마다 사륵사륵 소금 꽃 진다

 


* 소금이 온다 : 간수가 차오를 때 염부들이 서로를 독려하며 부르는 일종의 신호.
* 대패질 : 소금의 결정체가 보이기 시작하면 그 소금을 모으는 작업.
* 다구질 : 풍염제를 지낼 때 염부들이 부르는 노동요.

 

 

 

 

우수상

청보리밭 문장 / 김우진

 

 

종달새가 허공을 물고 지지배배 우는 청보리밭,

푸른 이랑이 나를 끌고 들어가 보리밭 중심에 세운다

바람이 허리에서 출렁거린다

!!!!!!!!!!!!!!!!!!!!!!!!!!!!!!!!!!!!!!!!!!!!!!!

저 수많은 느낌표들

겨울을 건너와 지금 절정으로 가는 중이다

새의 날갯짓에 보리밭이 분주해졌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바람은 보리밭의 표정을 필사한다

한 문장으로 익어가는 보리밭

촘촘하고 빽빽한 활자들이 까끄라기로 일어선다

새알을 품은 보리밭은 지금 진행형

오월의 들판을 받아 적는 나는 현재형이다

오월을 높이 띄우고 청록빛으로 번식하는 계절,

청보리의 힘으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보리풀때죽으로 끼니를 채우며 삽날을 세웠다


알알이 잘 여문 문장,

누릇누릇 마침표를 찍고 있다

누런 표지의 보리밭 한 권이 완성되어 가는 중이다

 

 

 

 

■우수상

꽈리 / 안현숙

 

 

칭얼거리는 아이들이 켜진 단칸방, 소리를 들키면 지붕이 달아난다고 여자는 둥지를 감쌌다. 마당에선 꽈리가 익어가고 그해 마을엔 장티푸스가 돌아다녔다.

 

점점 불거지던 소리는 그녀를 박차고 담을 넘었다. 골목에 웅크려 기회를 노렸을 극성스러운 독이 아이를 뚫었고 지붕은 온종일 열을 끓였다. 금세 도가니 속이 된 방, 꽈리가 열을 달랜다는 말이 얼핏 쪽창을 지나갔다.

 

소문 하나 약으로 달여지던 시간, 날마다 한 움큼씩 꺾인 꽈리나무 진액이 약이 되는 동안 도가니는 서서히 열을 내렸다. 무엇이 치미는지 여자는 한 번씩 울컥거렸다. 독을 뽑아내고 열매가 둘러앉은 방, 물컹해진 꽈리가 진물을 쏟아내면 휑한 껍질 속에 자꾸 바람을 불어넣던 아이들,

 

속이 차오르는 동안 열매를 생각했을까. 쭈글쭈글한 여자의 무릎에 꽈리 하나 불쑥 올라왔다. 걸음을 뗄 때마다 새인 듯 풀피리인 듯 이름 모를 소리가 꾀알꾀알 빠져나왔다.

 

 

 

 

 

 

 

 

 

2016 농어촌문학상 시부문 심사평


예심을 통과하여 본선에 넘어온 작품들 중에는 비교적 감각적이며 반짝이는 수작이 많아 읽는 기쁨도 함께할 수 있었다. 테크닉이 앞서 시적 깊이가 미처 못 따라가는 작품들이 간혹 보여 아쉬운 점도 있었다.
최우수 당선작은 염전으로 꾸려나가는 신산한 삶을 긍정적이고 활기 있게 변용시켜 생명감을 넘치게 한 부분이 크게 돋보였다. 글을 잘 다룰 줄 아는 솜씨 또한 시선을 붙잡았다.
우수작은 농어촌에서 사는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맑은 심성과 따뜻한 시선이 작품에 잘 녹아들어 있어 선정하게 되었다.

 

대학생 부문 최우수 당선작은 이미지가 신선하고 시적 표현법이 매우 개성적이었다.

우수작은 주제에 맞게 사물의 깊이를 감각적으로 잘 표현해내고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이 얼마나 축복된 삶인지 깨달을 좋은 기회였다.

 

 

심사위원장 문효치(시인ㆍ한국문인협회 이사장)
심사위원 김정임(시인ㆍ한국문인협회 편집위원) 장재선(문화일보 문화부장)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이순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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