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스크랩] [2016 시와사상 신인상 당선작] 김성진 외

문근영 2019. 2. 11. 10:07

[2016 시와사상 신인상 당선작] 김성진 외

 

- 23회 시와사상 신인상
●블랙아웃 외 4편 김성진
●BB탄이 들어 있는 작은 방울 외 4편 이한길

 

 

■블랙아웃 외 4편 김성진
블랙아웃

 


아버지, 잘 계셨나요.

 

컬러링이 잠꼬대처럼 울리고 나의 살은 하루만큼 잘려나갔습니다.
기억에서 사라진 살찐 공룡이 버둥버둥 날아오르고
해마다 피는 꽃이라고 하기엔 계절은 너무 짧군요.
서서히 확장되어 가는 공간에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오후의 게으른 그림자는 느릿느릿 바닥을 핥고 있습니다.
지상 최대의 음모가 벌어지고 있고
태양은 몸을 바닥까지 낮추고 살벌한 먹구름을 읽고 있습니다.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싱크홀 허공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싹둑, 도려내어 무대는 잘려나갔고
막과 막을 뿜어내는 검은 피마저 삐죽삐죽 내려옵니다.
세렝게티 초원의 누 떼는
굶주린 사자와 악어무리를 뚫고 죽음의 강을 건너왔습니다.

 

아버지, 저 다녀갑니다.

 

귀가 자라고 눈이 자란 길고양이는
벗지 못하던 식민의 하얀 가면을 송두리째 뽑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기억은 잊힌 지 오래지만, 풍경은 바람에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고 온 오후는 내가 없었습니다.

 

 

 


사라진 붕어

 

 

버스가 덜컹거리며 지나자
다리 아래는 얼음이 울고 있었습니다.
하늘이 막혀 날지 못하는 붕어들의 울음이었습니다.
선자들은 일제히 눈雪이 내리는 소리라 말했습니다.
언제부터 눈이 내리는 소리가 저렇게 크게 들렸던가요.
사람들의 머리에 안개가 피어오릅니다.
아침을 먹어본 지 오래지만, 눈雪을 본 지는 더 오래였습니다.
안개를 보면 조개 칼국수가 먹고 싶어집니다.
삐쩍 마른 껍데기 속엔 조개가 없었고
살 오른 주인 여자의 몸에서 조개 냄새가 났습니다.
거대한 벌레의 몸부림에
붕어가 살던 집은 쏟아져 내렸습니다.
싱싱한 붕어의 비린내는
그녀의 썩은 조개 냄새와 혼돈을 가져왔습니다.
그곳 응달에 살던 작은 붕어들은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지난 시월, 껍데기들이 축제를 열었다는데
그곳이 제집인 줄 갔다가 물살에 쓸려 가버렸나 봅니다.
댕그랑댕그랑 차가운 종소리가 울립니다.
종소리가 따뜻하다고 하는 사람은
차가운 그 쇳덩이에 혓바닥을 대어보지 않은 사람입니다.
하늘이 막혀 날 수 없는 계절인데,
붕어들은 어디로 가고 종소리만 울리는 걸까요.

 

 

 

 

무덤의 기억

 


늙은 고양이 한 마리 성큼성큼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지친 상수리나무는 몸 바꾸기를 한다
나무의 뼈와 고양이의 살을 바꾸었을 때
이미 나는 흙이 되고 말았다
둥근 어둠 속으로 한바탕 기억이 내려앉으면
누워있던 침실은 어느새 바다가 되지만
항해의 끝은 어디인지 아무도 모른다
지상에 가득한 주문을 외면
관들은 문을 열고 썩은 내 몸을 기다리고 있다
무덤 밖의 그 누가
나인 것처럼 내 뼈와 살을 찾아줄 수 있을지 알지 못한다

 

지금은 왜 생각할 수 없을까
사라진 생각을 기억하는 무덤은
온종일 환상통을 앓는다
뼈의 뿌리도, 살의 뿌리도 결국은 물이었다
무덤 위의 그 무엇도 예정이 없고
무덤 아래 그 무엇도 기억이 없어
지금이 경계선일 거라고
내가 죽었으니 신도 죽은 거라고
바람이 지나며 물의 뿌리도 빠져나간다

 

 

 

 

안티캔서

 

 

블랙아웃에서 빠져나온 그녀의 입술은
예전처럼 예쁘지 않았습니다.
발목으로 오렌지 즙을 방울방울 삼키고 있었고
허리춤의 눈물주머니로 붉은 눈물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자라지 못한 아픈 아이의 가슴이
숨어 있던 그곳에
청미래덩굴의 뿌리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눈을 깜박거릴 때마다
꿈은 하나씩 잊히고 있었습니다.
손톱 위의 그믐달처럼 영원히 자라는 꿈인 줄 알고
물들여왔던 시간은
눈처럼 펑펑 쏟아져 내렸습니다.

 

눈 내리는 소리는 짐승처럼 아둔했습니다.
눈의 뿌리는 하얗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원래 까맣지 않았다는 것을 모르지는 않았을 터,
검거나 하얀 눈은 무자비하게 내려
마침내 둥근 오렌지만 남았습니다.
잘려나간 한쪽같이 내 마음이 잘렸습니다.

 

 


엄마의 외출

 


아버지의 김치볶음밥이 지겨워져 갈 때
골목 밖으로 나는 눈目을 던져 놓고 있었습니다
엄마의 외출이 돌아오는 곳이라 믿었지만 문밖은 거미줄만 있었습니다
주인 없는 거미줄에
낯선 이방인만 하루를 삼키고 있었습니다

 

닫힌 대문이 덜컹,
기다림을 물어왔습니다
눈을 기쁘게 한 것은 지나가는 바람이었고
엄마의 외출은 여전히 그곳에 걸려 있었습니다
김치볶음밥은 바람에 꾸역꾸역 말라가고 있고
눈으로 기다리는 법을 배워버렸습니다

 

남일인 듯 관심 없다는 아버지의 표정은
뼈마디 드러난 당신만의 아픔이란 걸 안 뒤
골목에 던져놓았던 내 눈을 거두었습니다
목울대에 걸린 밥알들이 꺽꺽 숨을 토했습니다

 

종일 엄마를 외우다가 아버지를 잃고 말았습니다
아버지가 없는 지금

외출에서 돌아온 엄마의 모습은 자꾸만 작아집니다
김치볶음밥이 그리울 때마다
아버지의 시간을 만지고 있습니다

 

 

 

 


■BB탄이 들어 있는 작은 방울 외 4편 이한길
BB탄이 들어 있는 작은 방울

 

 

창문의 격자 속에는 새 떼가 산다
고양이는 앞발을 들어 안구를 긁는다
긁힌 자국은 말없이도 검어간다 그 안에서 곪아가는 말들 때문에 자국이 벌어진다
어미 없는 혀가 새어나와 병아리들의 조산과
햇빛이 증식하는 방식에 대하여 말한다 나불거린다

 

거위를 타고 날아간 소년이
노인의 붉은 꽃 속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둘 사이의 기간은 해당된 공간이
제멋대로 부풀어간다는 점에 대하여 하나의 고립이었기에
그들은 두꺼운 종이 커버 몆 장 사이에서 찰나일 수 있었고
그 사이에 유리창이 ‘있었다’

 

해당되지 않는 새벽에 유리창이 깨진다 벌어진다 또다시-

 

fade in

 

수직의 벽에 어리는 물 그림자를 자신의 유년으로 깊어가는 성인星人들의 관성이라 본다면
무늬에 어리는 햇빛을 볼 수 있게 된 미장이는
죽을 때까지 가난한 소녀들의 방만을 꾸몄다
밤이 되면 그의 꽃병 속으로 흰 새들이 날아들었고
새벽에 다시 창문으로 날아가는 새들을 보는 다리는 하나가 모자랐다

 

인간들의 상狀이 철새들의 이동과 관계가 있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반지를 강바닥으로 던져진 떠돌이와
열린 문을 지날 수 없는 탈옥수의 기분을-

 

점차로 밝아진다

 

(강바닥으로 헤엄쳐 내려가는 ‘하얀’ 젊은이와 모닥불 위를 뛰어넘는 ‘하얀’ 아가씨의 모습이 겹치도록 설정할 것 두 사람은 서로가 같은 자궁 속에서 들었던 음악을 목격하는 것처럼 보여질 필요가 있다)

 

오후의 골목에서 씹어먹는 김밥의 맛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대문 앞에서 서쪽으로 날아가는 새 떼를 보는 기분을, 두 사람은 알고 있다더라

 

어떤 차디찼던 소금과 어떤 짜디짰던 눈발을 기억하는
내가 햇볓 따스했던 화단에서 줍고 있던 하얀 것은

 

 

 

 


관여할 수 없는 해류
-ふざけないでよ だってそうじゃない*​

 

 

현재 이 이상의 고도는 허락되지 않습니다
기체는 이 고도에 조난 중입니다

 

이 밤을 하나의 약속이 멀어지는 교량橋梁이라고 본다면
이 체공은 자신의 허공을 체감한다는 의미에서
또 다른 추적으로서 기록될지도 모릅니다

 

기체의 창 밖을 내다보며
저 허공 너머에 있다는
혜성의 고리를 따라 비행하는
기장의 여생을 초대합니다

 

메울 수 없는 거리가 가지는 지독 앞에서
가지는 생의 습도는 매우 불안정합니다
그것을 이 기류의 연무煙舞라고 부릅니다

 

그 춤舞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無 하더라도
그 맹목은 종종 이곳의 기온의 축을 흔들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는 대개 회항回港하는 길은 불필요해집니다
기억해      주시겠습니까

 

이것은 아무도 쓸 수 없는
생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이 가지는 수첩이
익사하지 않고 동사凍死로 끝나는 것처럼
‘후’에 관해서는 언제나 시간의 농도가 관여합니다

 

도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전방全方으로 남겨진 허공과
볼 수 없는 내부의 공간은 동일합니다

 

한 쌍의 창窓이 천 개의 창에 안부를 전합니다
그 재회에 관여할 수는 없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이야기란 대개
누운 것과 뜬 것의 만남으로 시작하는 법이니까

 

닿을 수 없다는 점에서
머리 위의 허공과
발 밑의 수심은 동일합니다 오늘 밤은
한 때 자신이 살던 별을 미행하는
새를 타는 정원사의 생애를 초대합니다

 

오늘
그 외의 부유浮流하는 항로들은 모두 매몰됩니다

 

 

*웃기지 마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

 

 

 

 

비정성시(非情聲市)*
-첫 번째 오마주

 


미안해
이곳은 잿빛의 야생夜生
나비들의 맹목이 잠든 땅이야
하늘에는 연두색 태양이 떠 있지
동물의 내장들을 초록색 액체에 담궈놓았어
누군가 파랑이 된다면 나는
혼자서 소리를 내는 악기가 무서워질 테니까

 

없는    동안

 

나는 너의 오렌지빛 별 아래에 있었어
나의 고도古圖에서 네가 차지했던 시간만큼
닳은 손톱으로 실로폰을 두드렸어
해질녘마다 수취인 불명의 울음이 반송되었어

 

강을 건너던 기차가 한 번씩 바다를 건너려면
대체 몇 잔의 커피가 필요한 것일까

 

봉숭아가 피던 빈 교실에서
처음으로 너에게 편지를, 썼어
네가 어둠 속을 걷는 건 원치 않으니까

 

너의 집으로 가는 길,
하얗게 눈이 쌓였을 테니까

 

걱정 마
나는 죽지 않을 거야
막다른 골목마다 나는
너만을 가리키는 별을 돌리고 있으니까

 

아침엔, 언젠가 땅 속으로 사라져버린 마을을 찾아갔어
쥐들의 벌어진 입에서 두 번, 바람이 새어 나왔고
다리 위에서 떠내려가던 안구眼球들만 쳐다보았지

 

요정들이란 죽어서도
지상地上을 떠날 수 없는 종족들인걸

 

비어있는 집으로 조용히, 들어가
더는 노래할 수 없는 벽들을 위로하고 있었지

 

지붕이 없는 집을 방문할 때에는
반드시, 젖은 발인 채로 가야만 해
메아리의 고도古都를 품고 있는 노래는
아직 자신의 마지막 발성을 기억해 내지 못하거든

 

기다려, 줄래
곧 돌아갈 거야
네가 읽고 싶어하던, 피아노와
흰 손수건들이 자라는 이야기책을 들고

 

그리고, 그 때는 다시 한 번
떨어지는 벚꽃을 맞으러 가자

 

그 날의, 따스했던……
봄  날  로

 

미안해

 

 

*김경주 시인의 <비정성시(非情聲市)>에서 따옴.

 

 


http://blog.naver.com/sisasang94/220729057452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이순화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