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시에 신인상 시부문 당선작] 문화영 외
●자전거 외 2편 문화영
●감자 외 2편 조대환
●장미세탁소 외 2편 최달연
■자전거 외 2편 문화영
자전거
자전거가 누워있다
서서히 지쳐가는 바퀴살 사이
허공이 저절로 돌아간다
도시락을 흔들며 소풍에서 돌아오던 날
아버지는 못 본 척하고 골목을 구부리며 달려갔었다
폐달을 밟으며 아이보리색 잠바 붕붕 멀어져 가고
바퀴 지나간 자국에 빗물이 모여들었다 오랫동안
고인 물 위 길어진 하늘에 돌을 던지다 침을 뱉었다
흙탕물 튀기며 발길질을 해대도 혼내줄
아버지 돌아오지 않고 소문만 흥건하게 몰려들었다
들판 너머 또 다른 아버지 집에서
한 남자아이가 달맞이꽃처럼 자라고 있다고 했다
그때마다 마당 넓은 우리집은 빈들이 되어갔다
아버지가 둥근 바퀴로 누워있다
기름을 칠하듯 수액이 팔뚝으로 떨어진다
언덕을 오르고 신작로를 달리고 길 모퉁이를 돌아나가던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의 발목이
체인을 감은 것처럼 길게 늘어져 있다가
내 곁을 말없이 지나간다, 간다
흰 종이에 대한 사색
어제 저녁 스물다섯 마리 말을 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구간은 모처럼 풀성하였고 나는 흡족하여 잠이 들었다
밤새 무리지어 급하게 달리는 말들을 따라 나도 달렸다
아침에 장딴지 근육을 만져줄 요량이었다
마구간에는 몇 마리인가는 도망가고 또
몇 마리인가는 새끼를 낳고 있었다
더군다나 그 어린 것들이 말굽을 갈아 끼우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하룻밤도 참지 못하고 싸지른 똥은 무더기 바닥에 뭉개져 있었다
나는 화가나 말들을 굶기기로 하고
천장 높이 가져온 당근을 매달아 놓았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천리 밖의 냄새를 흡입하는 말들이 아닌가
그들이 갈기를 흔들자 매달린 당근에서 향기가 주르륵 흘러나왔다
나는 잔등에 안장을 앉히고 말에 올라
차라리 도망간 말들을 찾아오기로 했다
흘리고 간 울음소리가 아직도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채찍을 휘두르면 몇 마리는 붙잡아 올 수 있었지만
내가 탄 말이나 붙잡아야 할 말들은 발굽소리만 요란하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주저앉아 딴청을 피우기로 했다
말이 많았던 걸 후회한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마구간을 넓히고 서로 소통하게 한다는 방도 붙였다
그때부터 나는 말을 아끼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며
밤새 뜬눈으로 살아가야 할 운명 같은 걸 느꼈다
원형탈모
동그랗던 목소리에 모가 나기 시작했다
물기 많은 눈빛이 뾰쪽해졌다 아마 휴학하고 나서부터일 것이다
뒤통수의 한쪽이 허약해지고
소리 없이 머리카락이 한 가닥 한 가닥 빠져나간 자리를 보며
엄마가 울컥울컥 말했지, 우물이 생겼구나
긴 손가락 더듬거려 연고를 바른다 차라리
반들거리는 심장에 털이 송송 돋아나기를
졸업을 하고도 빈둥거릴 수 있도록
결혼 같은 거 생각 안하고 놀고먹을 수 있기를
거울 앞에 서서 작은 손거울로 뒷모습을 본다
어김없이 문이 열리고, 동그란 접시에 사과를 담아 오시는 엄마는
아침 사과는 금이라는데,
사과가 톡, 하고 과일 칼을 입에 문다
조급해 하지 마라 5년은 해야 붙는다더라
칼끝을 세우자 순식간에 곪은 곳이 도드라진다
아직도 한 2년은 더 버텨야 하는데
제 머리카락을 쑥쑥 뽑아 어깨에 떨어뜨리는 하루
모자를 집어 들며
사과를 받는다
■감자 외 2편 조대환
감자
속살까지 익었을 감자 압력솥에서 꺼낸다.
젓가락으로 내밀한 부분까지 깊숙이 찌른다.
금속성의 본질을 온전히 받아들인다.
감자의 체온이 열전도율의 공식을 넘어
플라스틱 용기에 동그랗게 담긴다.
정갈하게 담긴 채 김이 모락모락 솟아난다.
타원형 삶인 감자의 갈라 터진 얼굴이
출근 준비하는 아내를 온전히 빼닮았다.
아내는 고사목 같은 모습으로 서성대며
축축한 아침에 묶여있는 태엽을 풀고 있다.
감자 한 알을 호호 불며 하루를 엮어내는
부산해진 모습이 신발에 쫀득하게 밀착된다.
공장일을 하면서 새참으로 짬짬이 먹는다며
감자를 호주머니에 쑤셔 넣는 모습이 둥글다.
사라진 뒷모습이 눈 속으로 빨갛게 흡입된다.
무채색 호흡들이 엿가락처럼 늘어지고 있다.
보슬보슬한 토양에서 알알이 캐낸 감자
낮은 곳에서 캐 올린 잔영들이 점점하다.
그녀가 대를 이어 물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야윈 어깨를 이끌고 회사에 안착하려는 등 뒤로
감자 한 알이 후끈한 열기를 쭉쭉 뻗어낸다.
어머니
가볍고 작아진 어머니의 몸이 아랫목에 누워있다.
굼뱅이같이 오므라들었던 허릴 반듯이 펴고
쉴 틈 없이 움직였을 다리가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입학을 포기한 장남의 등록금만큼의 돈을
우물터에서 주운 후 종종걸음 쳐댔던 다리다.
자식을 위해서하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고
무릎을 치켜새울 만도 한데, 미동도 없다.
두 살 터울로 여덟 명의 자식들을 낳았다.
한 명씩 늘어갈 때마다 힘겨운 길을 걸었고,
그중 막둥이는 바지락 캐던 푸른 바다에
물감처럼 붉게 풀어버리고 벌판을 날뛰었다지.
그녀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라곤
정강이를 흔들어대거나 하늘을 바라보는 것
또는 낡은 손등을 쓰다듬어보는 것이었다지.
복숭아씨만큼 쪼글쪼글 졸아든 무릎뼈 아래
붓으로 검은 먹물을 찍어 쓴 것 같은 글씨
지워지지 않는 갑골문자로 또렷이 남아있다.
해독하기 어려운 문자 사이로 어머니의 세월이 흐른다.
낯익은 발견
몸이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한 채
차가운 방바닥에 폭삭 주저앉는다.
입고 있던 두꺼운 옷을 하나씩 벗는데
엄지발가락, 양말을 뚫고 고개를 내밀고 있다.
서글픈 생각 이마에서 물음표처럼 튀어나온다.
뱀허물처럼 늘어진 낡은 양말을 벗어던진다.
순간 드러난 발가락 모습, 바닥이라 불러야 할까.
하루종일 젖은 길을 걸었던 얼굴이라 불러야 할까.
무거운 매트를 어깨에 울러메고 언덕길 따라 배달할 때면
입을 한껏 오므리고 시린 몸을 매트 밑으로 구겨 넣었다.
하루종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걸었던 이 바닥
쓴맛이 허기진 혀의 깊이를 꾹꾹 눌러놓았다.
수렁 길을 걷거나 울퉁불퉁한 돌길을 걷거나
어느 곳이든 가리지 않고 턱 턱 앞장서던 발바닥
안쓰러운 생각에 후들거리는 손 내밀자
물집은 붉게 타오르는 채송화꽃처럼 피어난다.
파김치가 되어 주저앉은 몸의 무게를 견딘 발바닥
하루의 그림자를 투망처럼 끌어당긴다.
■장미세탁소 외 2편 최달연
장미세탁소
장미세탁소 주인은 장미 씨
골목시장 깊숙한곳, 그늘과 한 빛이다
그늘에서도 꿈은 자란다
눈먼 꿈들이 흩어져 꿈틀대는 곳
그림자도 없이 흔들리는 바지들이
눈송이가 내리다가 멈춘 길모퉁이에서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 길가 빈 의자를 읽고 있다
창 너머 뿌연 하늘을 기웃거리며 흔들리는 유골
달아난 단추만큼 깊은 고랑의 마음을 다스리며
오갈 데 없는 유골이 유골을 수습하고 있다
눈송이 하나 기다리며
눈물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기름때를 다리고 있다
모서리에 걸려있는 주인 잃은 바지도
이 광경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다
뒤영벌
서울역에 가면 그녀, 뒤영벌이 되고 싶다
닥터 지바고의 애인 같은
햐안 바지 빨간 티셔츠의 엣지한 여자
울어도, 울어도 눈물 마르지 않는 라라가 된다
누런 모래바람 같은 발걸음으로 부산한 공중화장실에서
포란중인 추억 한 닢을 몰래 주워 첫사랑을 표백하고
청도행 기차를 기다린다
어머니를 막 떠나온 열아홉
낙진 같이 엎드린 서울만 보았다
눈바람 속의 첫 나들이
그때 그녀와 그녀의 겨울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청도행 기차는 영영 도착하지 않았다
서울역에서 그녀, 청춘의 꿈을 꾸며 살지만
세상은 입 다문 무거운 꽃이다
어머니 기침소리 밀대방석 밑동 둘레를 들썩거리고
귀농한 남동생은 목장갑을 벗고
이마의 땀을 닦고 있는가
찰랑, 찰랑
서울역이 지나가며 손을 흔든다
기차가 온몸을 던지면서 떠나간다
저 길목의 어딘가에 막다른 그녀의 옛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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