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늘한 응시
박종해
푸른 실핏줄이 엉킨 철책을 감고
온몸이 신열로 달아오른 장미가 똬리치고 있다
서화담을 찾아간 황진이의 어깨가 처져있다
뜨거운 입김도 싸늘한 의지에 닿으면
농염한 육신과 함께 흐물흐물 삭이어 내리는 것일까
황금빛 관능으로도 녹일 수 없는
아득한 현기증 같은 빛의 알갱이들이
혈관 속으로 떠서 소용돌이친다
뜨거운 관능은 허무한 것이다
어느 날,
열반에 드는 스님같이
내가 문득 눈을 밟으며 지피던 장미는 보이지 않았다
뜨겁게 타오르던 열정의 꽃부리는 말라서
시들은 잎사귀에 겨우 비루먹듯 매달려 있었다
차가운 눈 속에서도 눈을 부릅뜨고
철책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 『미래시학』 2017년 가을호.
박종해 :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출처 : 작가사상
글쓴이 : 황봉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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